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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1월 3일(양력 12월 11일)에 제사가 있어 아버지 박진구 퉁 집안 어 른들이 양재리 장재동 종가에 모였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소탕작전을 나왔고, 아버지는 도망가다가 경찰 총에 맞았습니다, 또 종조부 박균경246)과 아들 박 섭구는 체포되어 현장에서 살해되었는데, 박섭구는 살아났습니다. 그날 함평 경찰서 기동대가 들어왔으며 함평경찰서로 연행된 분도 있습니다."247) 함평경찰서 기동대원에게 살해된 박진구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4촌 동생 박 예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는 손불서국민학교 3학년으로i 양재리 장재동에 살았고 사촌형님 박진 구는 산남리 강석에 살았습니다. 음력 11월 3일이 할아버지 기일인데 사촌형 님은 제사를 지내러 왔다가 경찰 총격에 사망하였습니다. 사촌형님은 경찰이 진주하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하다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습니다.’'248) 모량마을 모성만의 전모(前母) 김소금과 누나 모복님도 1950년 12월 12일 양재리에 경찰이 처음 진주한 날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신청인 모성만은 “두 분 모두 시신은 수습하였는데 어머니는 묘를 만들어 드렸지만, 누님은 어 려서 묘를 쓰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249) 다음은 모양션, 모일기, 김소금과 모복님 모녀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모학기의 진술이다. “모성만의 어머니와 누나는 1950년 음력 11월 4일 상막재에서 돌아가셨 습니다. 경찰이 그날 처음 작전을 들어왔습니다. 그날 상막재에서 사망하신 분은 모종두의 숙부 모양선, 모종채의 부 모일기, 모성만의 어머니와 이복 누나 모복념, 그리고 모종두의 외숙 김복현, 모종군의 외숙 염양수, 조남승 의 사촌형 조상술 등입니다. 그날 아침, 처음에는 주포 쪽에서 경찰이 들어 오더니 나중에는 사방에서 경찰이 들어 와 저는 양재리 장재동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신광 계천리 경찰고지로 잡혀갔다 돌아왔습니다 "25이 246) 박균경의 사망사실을 제적등본을 통하여 확인한 결과 ‘단기 4283년 11월 3일 오후 4시 본적지에 서 사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조사4팀-998. 247) 신청인 박래길 진술조서(2008.6.24.) 248) 참고인 박예구 진술조서(2009.6.11.) 249) 신청인 모성만 진술조서(2008.6.26.) 25이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 - 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