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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함평 수복 이후부터 군유산작전 이전 사건 1) 손불면 가)양재리 경찰은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양재리에 처음 들어왔다. 모량마 을 모종두(다-4279)의 숙부 모양선, 모종채(다-4289)의 아버지 모일기, 박래길 (다-4425)의 아버지 박진구, 모성만(다-10815)의 전모(前母) 김소금과 누나 모 복님, 조남승(다-10816)의 사촌형 조상술과 박연순(미신청)의 시아버지 장재록 등 모량마을 주민들은 경찰이 처음 들어온 이날 마을에서 3km 정도 떨어진 ‘상막재’24지로 피난을 갔다. 다음은 신청인 모종두의 진술이다. “1950년 12월 12일 점심 때 쯤 경찰이 마을에 들어오자 저는 아버지와 양재리 장재마을 농업용수로에 오후 5시까지 숨어있었습니다. 이후 반란군 은 빠져 나가고 주민들만 남았는데 이때 숙부 모양선도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하였습니다. 12월 12일 뒤에는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잡아가 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경찰 유가족 등 경찰 편에 선 사람들도 마을에 불을 질렀습니다."243) 모량마을 모종채의 아버지 모일기도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경찰 이 진주하자 주민들과 함께 상막재로 피난을 갔다. 모종채의 처 심순례244)는 “결혼 후 시어머니께 시아버지의 사망사실을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시아버지 는 ‘싸움 한 번 안 하는 분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245) 그날 산남리 강석마을 박래길의 가족은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종가인 양재리 장재마을에 갔다가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다음은 신청인 박래길의 진술이다. 242) 양재리에서 군유산 정상 방향의 능선으로 움푹 팬 부분이 있어 은신하기에 적합한 지형으로 사 건 당일 양재리 주민들이 이곳에 피신을 하였다고 한다. 243) 신청 인 모종두 진술조서(2008.5.20.) 244) 신청인 모종채는 2006.10.6. 사망하여 신청인의 처 심순례가 대신 진술하였다. 손불변-5166. 245) 신청 인 심순례 진술조서(2008.5.20.) - 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