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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유산작전 l주일 전쯤 경찰이 마을 앞에 수정동 주민들을 집결시켰습 니다. 노광영이 밤 사람들의 지시로 보초를 섰는데 이 때문에 경찰에게 잡 혀왔습니다. 보초를 서던 사람들은 흰옷에 검은 물들인 옷을 입고 다녔는 데 경찰이 검은 옷을 엽은 다른 2명과 함께 포박하지 않고 이송하였는데 중간에 이 사람들이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노광영을 포승줄로 묶어 계천리 경찰고지로 데려갔습니다."208) 부모 두 분이 모두 병중이어서 노광영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다.209) 같은 마을 이기춘(다-3878)의 아버지 이재용도 이른 아침 경찰의 총격이 시 작되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기춘의 사촌누나 이점례는 당시 상황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재용은 숙부인데 그날 새벽 총격이 시작되자 그분은 송사리를 거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군유산으로 가던 중 뒤쫓아 오던 경찰의 총 격에 사망하였는데 각기 따로따로 갔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총을 맞았는 가는 모르겠습니다. 시신은 제 어머니와 숙모님이 가셔서 수습하였습니다. 저는 총알이 쏟아지자 정신없이 뛰어서 삼천동으로 내려왔습니다. "21이 신청인 이기춘도 “아버지의 시신은 어머니께서 가족들과 함께 가셔서 어른 들과 함께 수습하였다”고 진술하였다.211) 정휴상(다-7288)의 형 정동일은 수정동에서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경찰에 잡혀 손불면 북성리 사기마을 뒤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다음은 정휴상의 진술이다. “형님 정동일은 목포에서 방위장교 교육을 받고 휴가를 나왔는데, 마을이 소개되어 가족이 복흥리 복치마을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방위장 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좌익들이 저의 가족을 군유산으로 끌고 갔습니다. 2월 19일 형님과 사촌형님이 경찰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사촌형님이 형 208) 참고인 김용문 진술조서(2009.3.5.) 209) 신청인 노상숙 진술조서(2008.4.24.) 210) 참고인 이점례 통화보고(2α>9.8.24.) 211) 신청인 이기춘 진술조서(2008.4.5.) - 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