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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정라 동정리는 경찰이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1차 진입하였을 때 청장 년들은 군유산으로 피하였고 노약자들만 마을에 남았다가 경찰에게 살해되었 다.191) 그 뒤 일부 주민은 경찰의 소개명령에 피난을 나왔으나 식량과 음식이 떨어져 마을에 들어갔다가 2월 19일 군유산작전을 맞았다. 동정 1리 냉천마을은 함정리 청계와 연결되어 군유산 우측으로 이어진다. 이 마을 심기종(다-10795)의 숙부 심회택,192) 숙모 정상례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으나 숙모 정상례는 1951년 2월 19일 군유산에서 숙부 심회택은 경찰에 연 행되어 학교면 죽정리 얼음재에서 사망하였다. 냉천마을 거주 참고인 심연옥 의 진술이다.193) “심회택, 정상례는 숙부모이고 심기종은 이복동생입니다. 냉천에서는 대 부분 신여마을 암밝골로 피난을 갔는데 이 분들은 군유산으로 가셨습니다. 숙부의 시신은 조모님이 동네 어른 한 분과 함께 얼음재에서 찾아와 선산 에 매장하였습니다. 숙모의 시신도 조모님이 가셔서 군유산에서 갓난아기 를 안고 죽어 있는 것을 찾아와 숙부와 합장하였습니다. 숙부는 소실 할머 니의 자녀 였습니다."194) 동정2리 신여마을에 살았던 한규호(다-2297)의 아버지 한만수 등 가족도 아 침 일찍부터 군유산작전을 나온 경찰이 마을방향으로 총격을 가하자 군유산 으로 피난을 갔다. 한규호의 가족은 군유산 ‘비자나무골’에서는 함께 있었지 만 피난민들을 추격하는 경찰의 총격에 흩어졌다. 한규호와 동생은 군유산 봉 우리를 넘어 손불면까지 갔다가 그날 밤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비자나무골에 서 경 찰의 총격 에 사망하였다.195) “경찰이 날짜를 정하여 허가를 해 주어야만 시신을 찾으러 다닐 수 있었는 191) 신청 인 심승욱 진술조서(2008.5.7.) 192) “심회택은 함평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고 신광서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신청인 심 기종 진술조서(2008.6.25.) 193) 신청인 섬기종의 실제 나이는 1943년생으로 사건 당시 8세였으나 영광군 불갑면 외가에 있었기 때문에 사건 내용은 이복형인 심연옥(1935년생)으로부터 들었다. 194) 참고인 심연옥 진술조서(2009.3.4.) 195) 신청 인 한규호 진술조서(2008.4.21.) - 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