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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김재명의 진술이다. “음력 1월 16일 경찰기동대가 재차 들어오면서 주민들이 14일처럼 도망을 갔는데,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피난을 갔고, 할머니 강태원과 숙모의 친정어머 니 모평댁은 저와 함께 집에 계셨습니다. 경찰기동대가 우리 집에 있던 이 분들을 마을 옆 ‘일진개미’로 끌고 갔는데 저도 따라 갔습니다. 경찰이 총을 쏘아 저만 빼놓고 모두 사망하였습니다."167) 당시 사건을 목격한 참고인 김채섭의 진술이다. “김재명의 할머니와 숙모의 친정어머니는 사간동 뒤 군남면 용암리 덕응마을과 사간동 경계인 ‘일진개미’에서 돌아가셨는데 날짜가 음력 1 월 16일(양력 2월 21 일)입니다. 이 두 분이 돌아가신 것은 제가 목격하 였습니다. 그리고 김재명의 숙모 정일순과 정일순의 아들(미호적)은 군 남면 용암리 마구청에서 사망하였는데 제가 형수의 시신을 매장하면서 이 분들도 매장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168) 같은 마을에 거주하였던 신청인 박길남(다-7292)의 전부(前父) 、강대현도 피 난을 갔다 오다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박길남은 돌아가신 어머니 김순례 로부터 “강대현이 군유산 봉우리에서 경찰이 내려오라고 하여 내려오면서 바 위틈에 숨어있었는데 주변을 확인하던 경찰에게 총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 었다. 시신은 가족이 수습하여 신광면 계천리 ‘숭굴’에 매장하였다.169) “경찰이 빠져나가고 땅거미가 질 무렵 군유산에서 내려와 집에 돌아왔는 데 그때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기마을에서 집으로 오려면 군유산 방향으로 올라오는데 그곳으로 오던 중 강대현이 바위틈에 쪼그리 고 앉아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170) 송계마을 김재기(다-2305)의 부 김미섭 • 모 최인림, 여동생 김 o O(미호적) 등 가족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최인림은 갓난아이였던 여동생을 업고 가 167) 신청 인 김 재 명 진술조서(2008.5.6.) 168)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169) 신청 인 박길남 진술조서(2008.8.8.) J70)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 6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