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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당시 시신을 찾으러 다니면서 시신 수습 또는 시신을 목격한 참고언 김 채섭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형수 최인림과 어린 질녀(호적 없음)는 손불변 북성리 사기마을 뒤 군 유산 봉우리 아래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곳에서 형수와 질녀의 시신을 보 았습니다. 군유산작전이 끝난 바로 뒤에는 경찰이 허락이 없어 시신을 수 습하러 갈 수 없다가 20여일이 지나서야 시신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저의 형님과 함께 찾으러 가서 큰 바위 밑에 쪼그린 상태에서 돌아가신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 이종환의 사촌형 이종진 은 연흥사 앞에서 총에 맞은 것을 이종진의 매형이 업어다 손불면 동암리 봉통마을 이종진의 처가에서 치료를 받다가 며칠 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 었습니다 ...... 김창현의 아버지 김정남 등 가족도 마을에서 함께 피난을 나갔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습니다. 김정남과 동생 김종성, 이 두 사 람은 김창현의 당숙 김동준이 경찰의 허락이 있은 뒤 시신을 찾았는데 현 장에서 수습하였습니다. 시신을 찾았던 김동준은 현재는 사망하였습니다. · 김용호 계조모 남천댁은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 ‘마구청’에서 죽었습 니다. 제가 시신을 수습하여 송계마을 뒤 군유산 능선에 매장하는 것을 목 격하였습니다 ...... 김정기의 조모인 박막동은 군유산작전 때 손불면 북성 리 사기마을 뒷산 봉우리 아래에서 돌아가셨는데 시신은 최인림이 왼쪽이 었고 박막동은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160) 사간동 거주 김대원(다-2618)161)의 할머니 배복치도 가족을 따라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대원의 부모와 김대원이 군유산 정상에서 경찰에게 잡혀 있을 때 배복치는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배복치의 시신은 군유산 연흥사 방향 ‘얼개재’에서 수습하였다.162) 다음은 배복치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정 내숙의 진술이다. “김대원의 할머니는 군유산 베틀바위에서 돌아가신 것을 제가 군유산 봉 우리에서 연흥사 뒷골에 숨어 있다가 내려오면서 보았습니다. 그분은 갓을 쓰고 거꾸로 매달린 상태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음날 제가 김대원의 가족에 게 할머니 배복치가 돌아가신 장소를 말씀드렸습니다."163) 160)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161) 신청인 김대원은 중풍을 앓고 있어 처 임순덕이 대신 진술하였다. 162) 신청 인(참고인) 염순덕 진술조서(2008.5.6.) l(3) 착고'21 것내숙 치숭조서('2얘19.3 서 - 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