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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총에 태극기를 꽂고 집에 틀어와 잠자던 형님을 마을 앞에서 총살 하였습니다. 아마 전날 밤에 마을에서 밀고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145) 2) 신광면146) 가) 송사1리 1951년 2월 19일 송사리 주민들이 총성을 들은 것은 여명이 밝아오던 오전 5시경이었다. 그날 경찰은 신광면 함정리와 보여리를 거쳐 동암태에 이르러 군유산 정상에 기관총격을 가하였다. 다음은 송사리 송계 주민 김채섭과 사 간동 거주 신청인 정내숙(다-2300, 4312)의 진술이다. “그날 새벽 5시가 조금 못되어 경찰은 마을 앞산인 함정리 달봉산에서 총을 쏘았고 장전마을 뒷산 봉우리 지나 동암태 봉우리까지 진격하여서는 군유산에 기관총을 쏘았습니다. 이때가 오전 10시경이었습니다."147) “군유산 정상에서 보니 손불면, 신광면, 영광군 군남면 쪽에서 피난민들 이 새까쌓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총격을 가하며 뒤쫓아 올라오자 피난민들은 도망쳤는데 저는 연흥사 골짜기 쪽으로 내려가 숨어있었고, 다 른 가족은 연흥사 뒷봉에 숨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봉우리에서 골짜기마다 피난민들로 가득 갔는데 그곳에 총격을 가하였습니다."148) 송사1리 사간동 정내숙의 형 정길성 등 가족은 아침을 먹을 무렵 함정리 달 봉산에서 경찰의 총격이 시작되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군유산은 각 방향 에서 올라온 피난민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였다. 추격이 계속되자 피 난민들도 정신없이 내려왔는데 정내숙은 영광 군남면 남창리 방향으로 뛰어 가는 피난민 속에서 형님 정길성과 박종해 김재현 김광현 등을 보았다.149) 145) 참고인 나장균 진술조서(2009.6.11.) 146) 신광면은 함평군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군경은 1950년 10월 함평읍을 수복한 후 영광읍을 수복하면서 면소재지를 통과하였다. 이후 경찰은 계천리 사천에 고지를 구축하고 인근 지역에 토별작전을 벌이며 좌익 활동 혐의자에 대하여 연행 · 조사하였다. 신광면이 완전히 수복된 것은 군유산 아래인 송사리 사간동과 송계마을에 경찰이 진주한 1951년 2월 19일이다. 147)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148) 신청인 정내숙 진술조서(2008.4.23.) 149) 참고인 정내숙 진술조서(2009.3.3.) - 6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