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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2월 26일 대동면 향교리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왔다. 다음은 신청인 모재원의 진술이다. “숙부는 인민군 점령기 인민군 편에서 활동하여 경찰이 연행하였습니다. 그 뒤 총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신을 찾았는데 20여 일이 지난 1951 년 2월 26일(음력 1월 21일)에야 대동면 향교리에서 찾았습니다. 형님 모장 원이 전쟁 전엔 구례경찰서 경찰이었고 전쟁 후에는 국군에 입대하여 삼촌 이 피해를 막으려고 인민군 쪽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142) 모종술이 1951년 설 직전 경찰에 연행되어 대동면 향교리에서 시신을 수습 하여 온 사실에 대하여 같은 마을 참고인 모학기는 “모종술은 당시 나이가 30 살 정도였다. 그 사람은 인민군 점령기에 반란군 편에 섰었던 것 때문에 수복 후 경찰을 피해 다녔는데 대동면에서 경찰에게 살해되어 시신을 수습하여 왔 다”고 진술하였다.143) 동암리 벽초 나영주(미신청)의 아버지 나상균은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경찰이 몰려오자 군유산에서 내려와 영광 군남면 석정리 처가로 갔다. 나상균 은 다음날 저녁 경찰에 연행되어 마을 앞에서 총살되었다. “어머니께 들었는데 아버지는 인민위원회에 다니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 지 시신은 외가에서 수습하였고 손불면 궁산리 묘동에 이장하였습니다. 동 암리와 죽장리에 아버지와 같이 인민위원회에 다녔던 분이 더 계셨는데 죽 장리 분은 그 뒤 경찰에 자수하여 무사하였다고 합니다."144) 나상균의 동생으로서 언민군 점령기 동암마을 소년단 단장을 하다가 군유 산 아래 사기마을에서 생활하였던 나장균은, 나상균이 영광 군남면 석정리에 서 경찰에 끌려 나가 살해된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형님이 당일 군유산에서 내려간 뒤에 저는 다음날 형수님과 함께 영광 군남면 석정리 형님의 처가에서 형님을 만났습니다. 다음날 오전 10시경 142) 신청인 모재원 진술조서(2008.6.9.) 143)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 J44) 참고인 나영주 진술조서(2008.5.22.) - 6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