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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인민군 접령기 마을에서 구장을 맡았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 윤상록이 연행하였습니다. 윤상록의 부친이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는데 부친 의 장례를 치르고 오다가 아버지를 만나 연행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인민군 점령기 구장을 하셨던 것 때문에 경찰이 들어오자 자수를 하고 사 건 발생 무렵에는 함평읍에 계셨습니다. "13끼 궁산리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김관석은 이경민의 사망은 경찰 윤상록 및 윤 상록의 사촌과 관련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김관석의 진술이다. “이경민은 인공시기부터 구장을 맡았습니다. 윤상록은 윗동네인 덕산마 을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반란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윤상록과 의용경찰인 사촌이 이경민을 연행하였습니다. 궁산리 덕산 김판중138)도 이날 연행되어 죽었습니다. 이경민은 경찰 000 이 친구여서 그에게 자수하여 통행증을 받았는데 시신을 수습할 때 보니 그 통행증도 없어졌습니다."139) 궁산리 신흥마을 공천수(다-7794)의 아버지 공정엽도 동생 공정영이 인민군 점령기에 반란군 편에 섰던 것 때문에 피신하였다. 1951년 3월 9일 손불지서 에 가던 공정엽은 산남리에서 경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140) 공정엽의 사망은 당시 같은 마을에 살았던 홍연례가 시신을 목격하였고, 장례를 치렀다. 참고 인 홍연례의 진술이다. “공정엽의 동생 공정영이 반란군 편에 있었습니다. 손불 수복 후 지서에 서 공정영을 잡으러 자주 나왔는데 동생 때문에 공정엽도 피신하였습니다. 공정엽은 손불지서에 자수하러 가다 경찰에게 죽었습니다. 공정엽의 택호 가 나리매양반인데 “나리매양반이 죽었다”고 하여 알게 되었고 산남리 용 홍 부근 ‘옷빠골’에서 시신을 찾아왔습니다. "141) 사) 그 외 지역 양재리 모량마을에 살았던 모재원(다-4275)의 숙부 모종술은 1951년 설 직전 137) 신청인 이창범 진술조서(2008.6.11.) 138) 김판중의 제적등본을 확인한 결과 김판중은 1906년생이었으며 사망신고는 미필이었다. 139) 참고인 김관식 진술조서(2α)9.3.18.) 140) 신청인 공천수 진술조서(2007.4.9.) 141) 참고인 홍연례 진술조서(2009.5.29.) - 6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