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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움을 받아 가족이 반란군에게 살해되기도 하였습니다. "124) 군유산작전 직후 경찰은 마을에 들어와 주민을 집결시키고 부역자 및 좌익 활동 혐의자들을 연행하거나 살해하였다. 금곡마을 배호묵(다-4274)의 아버지 배재고, 숙부 배재만이 1951년 5월 20일 금곡 앞에서, 7월 10일 손불지서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배호묵은 배재고의 사망에 대하여 “아버지는 숙부 배재만이 좌익 활동을 하여 군유산작전이 끝 난 뒤 함평경찰서 기동대가 마을 앞으로 불러내어 살해하였다”고 하였다.125) 다음은 신청인 배호묵의 배재고 · 배재만 형제의 사망사건에 관한 진술이다. “숙부 배재만이 좌익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함평경찰서 기동대가 잡으러 마을에 자주 왔었습니다. 숙부의 활동과 관련하여 아버지 형제 중 두 분만 돌아가셨지 다른 분들은 무사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마을 에 경찰이 들어와 숙부를 찾았는데 숙부는 학산리 앞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습니다. "126) 배재고 • 배재만 형제의 사망과 관련하여 배재고의 재당질인 배귀태는 다음 과 같이 진술하였다. “배재고, 배재만 두 분은 7촌이 되는 분들입니다. 배재고는 동생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배재고는 군유산작전 뒤 음력 4월경에 돌아가셨고, 배재 만은 그 뒤 해은마을 앞 바다에서 총살되었습니다. 배재고의 시신은 동네 어른들이 수습하였고 배재만은 배를 타고 도망가는 것을 총살하였는데 시 신은 동네에서 수습하여 매장하였습니다. "127) 같은 금독마을 김상기(다-4684)의 아버지 김장수도 군유산작전 이후 마을에 들어온 경찰에 의하여 마을 들머리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김상기는 “경찰이 마을에 와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하여 큰아버지가 아버지와 같이 나갔는데, 경찰이 아버지에게 마을로 돌아가라고 하고 돌아서니 뒤에서 총을 쏘았다”며 “아버지는 뒷산에 모셨으며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음 124) 참고인 백영해 진술조서(2α>9.6.9.) 125) 신청인 배호묵 진술조서(2008.5.20.) 126) 신청 인 배호묵 진술조서(2008.5.20.) ,J27) 참고인 배귀태 진술조서(2α>9.6.9.) - 6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