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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만 믿고 피난을 갔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다고 진술하였다.116) 그러나 참고인 배정문은 “김연옥의 형님 검연섭은 복학분주소에서 대원으로 활동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배정문의 진술이다. “김연옥은 당시 30대로 농사짓고 살았는데 김연옥의 형님 김연섭이 인민 군 점령기 복학분주소 대원이었습니다. 김연섭은 군유산작전 뒤 잡혀 15년 간 복역하고 나와 살다가 사망하였습니다. 자신의 형 김연섭이 분주소에서 활동을 하였던 것 때문에 김연옥도 피난을 갔다가 경찰에게 잡혀 사망하였 습니다."117) 지호마을 문동주(다-4936)의 아버지 문봉순은 1951년 2월 20일 군유산 작전 직후 손불면 소재지인 대전리 수문에 나갔다가, 3월 11일(음력 2월 4일) 지호 마을로 오던 중 경찰에 잡혀 마을 앞 저수지에서 사망하였다. 문봉순의 사망 사실에 관한 문동주의 진술이다. “아버지는 지호마을 인민위원장이었습니다. 인민위원장을 하게 된 것은 반란군들이 부면장 가족을 도왔다고 죽이려고 하니 마을에서 인민위원장 이라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라고 하여 하게 된 것입니다. 군유산작전 후 마을에 불을 질러 아버지는 대전리 수문으로 피난을 나왔습니다. 아버지 시신은 수습하여 현재는 선산에 모셨습니다. "118) 사건 당시 지호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백영해는 군유산작전 직후 지호 마을 사정과 문봉순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문동주의 아버지 문봉순은 인민군 점령기에 리 인민위원장을 하였는데 이것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문봉순이 인민군 점령기에 김사병 가족 을 숨겨준 일이 있어서 김사병과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권유로 리 인민위원장을 하였는데 그것 때문에 군유산작전 후 피신하였습니다. 시신 은 지호마을 앞 저수지에서 수습하였습니다."119) 116) 신청인 김금례 진술조서(2008.8.19.) 117) 참고인 배정문 진술조서(2009 .6.10.) 118) 신청인 문동주 진술조서(2008.6.25.) 119) 참고인 백영해 진술조서(2α)9.6.9.) - 6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