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9page

차경마을에 임시 매장하였다”고 진술하였다.106) 같은 마을 이풍식(다-5098)의 어머니 신연여, 작은형 이창식, 여동생 이영희도 군유산에서 경찰과 대한청년단원에게 손불지서로 연행되었다. 어머니와 작은형 은 경찰에 살해되었고, 여동생은 집으로 돌아왔다. 이풍식의 큰형 이형식도 군 유산으로 피난을 나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은 이풍식의 진술이다. “‘입산을 해야 산다’는 분위기여서 아버지와 큰형은 전날 입산하였습니 다. 다음날 아침 경찰이 개미떼처럼 몰려오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어머니, 작은형, 여동생은 군유산에서 손불지서로 연행되었고 아버지는 자 수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작은형은 2월 24일 손불 한청고지에서 죽었고, 여 동생은 집으로 왔습니다. 큰형이 경찰에게 죽었다는 말은 군유산작전 2, 3 개월 뒤 큰형 친구인 송복수와 김영남에게 들었습니다."107) 이풍식의 가족 등 주민들이 군유산으로 피난하게 된 이유를 “1950년 12월 12 일(음력 11월 4일) 처음 작전을 들어온 뒤로 경찰이 주민들을 조사한다고 연행 하여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음은 참고인 이귀술의 진술이다. “음력 11월 4일 뒤로는 신광 경찰고지에서 조사한다고 날마다 불러내니 주 민들은 군유산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피난을 갔습니다. 이풍식의 가족은 인 민군 점령기에 특별한 활동도 하지 않았지만 신광 경찰고지에서 못살게 하여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풍식의 어머니와 작은형은 군유산에서 연행 되어 손불 경찰고지 부근 산당고랑에서 총살되었고, 큰형은 나중에 사망하였 다는 말을 들었으나 시신은 찾지 못하였습니다."108) 죽장리 장동마을 이엽비(다-5097)의 아버지 이상길은 군유산작전 뒤인 1951 년 2월 26일(음력 1월 21일) 경찰에 연행되어 신광면 유천리에서 살해되었다. 신청인 이엽비는 “아버지는 누군가 불러서 집에서 나가셨다가 돌아가셔서 시 신을 수습하여 왔다는 말을 할머니께 들었다. 제사는 사촌인 이정산이 지내고 있다”고 진술하였다.109) 이상길이 신광면 유천리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에 106) 참고인 이육종 진술조서(2009.3.18.) 107) 신청 인 이풍식 진술조서(2008.4.19.) 108) 참고인 이 귀술 진술조서(2009.5.28.) - 6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