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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는 것은 경찰의 지시로 짐을 지고 경찰을 따라갔던 이필범으로부터 들 었고, 어머니의 사망사실은 손불지서로 연행되었던 주민으로부터 들었다. 다 음은 김영남의 진술이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피난을 갔는데 경찰이 사방에서 총을 쏘자 신광 송 사리 사간동에서 숨어 있다가 밤에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군유산작전 뒤 경 찰이 시신을 수습하라고 하여 아버지 시신은 숙부가 군유산에서 수습하였 고 어머니 시신은 손불 대전리 경찰고지 부근 산당고랑에서 수습하였습니 다. 아버지가 군유산 정상에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어머니가 경찰에게 연행 되어 산당고라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이필범이 이야기를 해주어서 알게 되 었습니 다."103) 또 같은 마을 거주 참고인 이귀술도 “김영남의 부모님 시신은 경찰이 수습 하라고 하여 아버지 시신은 숙부가 군유산에서, 어머니 시신은 손불면 대전리 경찰고지에서 수습하였다”고 진술하였다.104) 장동마을 이귀술(다-4567)의 아버지 이상용도 군유산에서 경찰에게 살해되 었다. 이귀술은 “형 이귀만이 ‘좌익에 협조’하여 신광 수복소식을 듣고 군유산 으로 갔고, 가족도 북성리 사기에서 생활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형님이 분주소에서 일을 하였던 것 때문에 가족은 작전이전에 북성리로 갔습니다. 군유산작전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여동생을 업고 있다가 군유산 8부 능선에서 경찰의 총을 맞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은 현재 광주에 살고 있는 여동생 이매례가 말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경찰이 산당고랑으로 연행하였는데, 연행을 목격한 분들의 도움으로 시신은 산당고랑에서 김영남 의 숙부가 이풍식의 어머니 시신과 함께 수습하였습니다."105) 참고인 이육종은 “이귀술의 형 이귀만이 반란군 쪽에서 활동을 하여 그 때문 에 이귀술의 아버지가 군유산으로 피난을 하였다가 사망하였다. 군유산 8부 능 선에서 돌아가신 이귀술의 아버지 이상용의 시신은 주민들이 가서 수습하여 103) 신청 인 김 영 남 진술조서(2008.5.21.) 104) 참고인 이 귀술 진술조서(2009.5.28.) 105) 신청인 이귀술 진술조서(2008.5.21.) - 6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