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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산남리 용홍마을에 살았던 참고인 김영국은 그 당시 마을의 상황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김용남의 조부 김영섭과 김문호의 형인 김영성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는 데, 그 두 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을에 았으면 죽으니까 군유산으로 피신가 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당시 형님과 함께 군유산 에서 사망한 사람은 김병선의 누나 김소순과 김문호의 형 김영성입니다."92) 유록마을 남수남(다-4277)의 아버지 남삼자도 군유산에서 사망하였다. 신청 인 남수남은 “당시 5살이어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고종사촌 오빠 이봉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하였다.93) 사건 당시 21세였으며 시신을 수습하였던 참고인 이봉장은 남삼자의 사망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남삼자는 외숙인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사건 당일 오후 외종사촌 동생 남수남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날 남수남이 저에게 와서 “아버지가 나 를 업고 가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남수남은 현장에서 마 을까지 혼자서 왔고 장소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남삼자의 시신은 며칠이 지 나서 수습하였습니다."9씨 청등마을 김영석(다-4940)의 아버지 김석현은 군유산작전 전날 저녁 군유산 으로 갔다. 다음날 경찰의 작전이 끝나자 함께 피난 나온 주민들이 김석현에 게 군유산에서 내려가자고 하였지만 산에 남아 았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승선 마을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당시 승선마을은 경찰이 군유산 정상에 서 연행한 민간인과 피난행렬에서 좌익혐의자들을 선별하여 집단으로 살해하 였던 곳이다. 김석현의 시신은 산남리 수연마을 황두채가 수습하였다.95) 다음 은 황두채의 진술이다. “김석현은 통네에서 애현으로 불렀습니다. 그 분의 형님과 한 동네에 살 92) 참고인 김영국 진술조서(2008.5.23.) 93) 신청 인 남수남 진술조서(2008.6.24.) 94) 참고인 이봉장 진술조서(2009.3.19.) 95) 신청인 김영석(정윤자) 진술조서(2008.5.21.) - 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