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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하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영성은 동생 김문호와 함께 출발하였으 나 마을에 경찰이 들어오지 않자 김문호는 마을로 돌아왔고 김영성만 군유산 으로 갔다.88) 김영성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산남리 김병선은 “종형 김영남이 북성리 승선 마을 앞 사거리에서 경찰에게 잡혀 있었는데 이때 ‘김영성도 경찰에게 잡혀 총살대상자 쪽에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았으나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이야 기를 종형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참고인 김병선의 진술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 종형 김영남으로부터 들었는데, 김영성은 종형과 함 께 북성리 승선에서 경찰에 잡혀 있었는데 경찰이 종형에게는 “공중에 총 을 쏠 테니 그러면 너는 엎드려라”고 하여 종형은 살아나 마을로 내려왔 는데 김영성은 경찰에 선별되어 있는 것은 보았으나 총살여부는 목격하지 못하였답니다. 종형은 전쟁이 끝난 20여 년 뒤 사망하였습니다갯9) 김영성의 당질 김형수는 “당숙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지만 제사는 정월 13일에 지내고 있다. 당숙은 함평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고 전쟁 전에는 군청 에 다녔는데 군유산작전 무렵에는 집에 있었다. 그날 형님과 김소선, 김영백 등은 승선동에서 돌아가시고 김동현과 김영남은 살아왔다”고 진술하였다.90) 같은 마을 김병선의 가족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병선의 누나 김소선 은 군유산 중턱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총격을 받았다. 김병선의 아버지는 총탄이 발 뒤꿈치를 스쳤지만 무사하였고 김소선은 현장에서 사망 하였다. 시신은 2, 3일 후 부모가 수습하였다. “그날 어머니와 형님을 제외하고 모두 군유산으로 갔습니다. 그때 보았는 데 손불 쪽은 경찰이 지키고만 있었는데, 영광 쪽은 불을 지르고 총을 쏘며 쫓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불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와 누나는 같 이 있다가 누나는 총을 맞아 사망하였고, 아버지는 총알아 발뒤꿈치를 약간 스친 상태에서 죽어가는 누나를 보시기만 하였다고 합니다.껴1) 88) 참고인 김문호 진술조서(2008.5.22.) 89) 참고인 김병선 통화보고(2009.10.9.) 90) 참고인 김형수 진술조서(2009.6.11.) 2 1 ) 착고인 김벽선 진술조서(2008.6.12.) - 6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