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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종은 군유산작전 때 군유산으로 피난을 나와 승선마을 네거리에서 경찰에게 총을 맞아 돌아가셔서 시신은 수습하여 산남리 용흥마을 옆 산에 모셨습니다. 그날 저는 월천리, 북성리 승선을 거쳐 군유산 봉우리까지 올 라갔다가 경찰에게 잡혀 승선마을 네거리까지 내려왔습니다."7이 내감마을 이광식(다-4427)의 아버지 이부현은, 경찰이 1951년 2월 19일 경찰 이 주포방향과 신광면 송사2리 삼천동 방향에서 경찰이 작전을 들어오니 군 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77) 다음은 이광식의 진술이다. “경찰이 군유산을 점령한 뒤 점심 무렵에 정상에서 피난 나온 주민을 꿇 려 앉히고 경찰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피난민들을 지목하여 옆에서 총살하 였습니다. 그렇게 30, 40명 정도가 총살되었습니다. 저는 경찰이 시켜 소를 끌고 신광지서까지 갔는데, 그곳에서도 경찰이 피난민을 총살하는 것을 보 았습니다. 아버지 시신은 현장을 목격한 주민 박계순이 말해주어 군남 방 향 굴속에서 수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이 손을 들고 나오라고 하니 굴속에서 나오다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78) 신청인 이광식과 같은 마을 거주 참고인 김남수는 이부현의 사망사실에 대 하여 “주포 방향에서 경찰의 총격이 시작되자 아침밥을 먹고 군유산으로 피 난을 갔는데 사기마을 뒤 골짜기에서 이부현이 총살되는 것을 보았다”고 진 술하였다,79)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서 행적은 확인되나 시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도 있 었다. 북풍마을 문건식(다-4431)의 조부 문재동(1908년생)도 주민들과 함께 군 유산에 피난을 갔다. 다음은 신청인 문건식이 부모로부터 들었던 조부 문재동 에 관한 진술이다. “1951년 음력 1월 14일 마을에 경찰이 총격을 가하며 진입하자 총성을 듣 고 할아버지 등 동네 분들은 군유산으로 피신하였는데 할아버지는 돌아오시 7이 참고인 김남수 진술조서(2α)9.6.13.) 77) 신청 인 이광식 진술조서(2008.5.19.) 78) 신청 인 이광식 진술조서(2008.5.19.) 79) 참고인 김남수 진술조서(2009.3.18.) - 6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