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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날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중턱까지 밖에 못 갔습니다. 경찰 이 총을 쏘자 중턱에서 영광 군남면 대덕으로 갔다가 그날 밤 돌아왔습니 다. 형님과는 집에서는 같이 나갔으나 바로 헤어졌습니다. 형님이 2,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아버지께서 찾으러 다니시다가 평암골에서 시신 을 찾아 와 선산에 모셨습니다. 형님과 함께 돌아가신 분이 강두원의 형제 인데 그 분 가족들과 함께 가서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73) 다)산남리 산남리는 함평읍 주포지서와 면소재지의 중간에 있는 마을로 산남리에는 15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1951년 2월 19일 이전에는 마을의 청 · 장년이 지 방좌익의 지시로 경찰의 진업에 대비하여 보초를 선 경우가 많아 군유산작전 때는 경찰에게 선별되어 북성리 승선동에서 총살된 경우가 많았다. 산남리 내감마을 박선자(다-4419)의 아버지 박태종도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 가 경찰이 손을 들고 내려오라고 하여 내려왔는데 북성리 승선동74) 부근에서 경 찰의 총격 에 사망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은 살려야 된다면서, 남동생만 데리고 군유산으로 파신을 갔습니다. 어머니께 들었는데, 경찰이 산에 불을 지르며 ‘손을 들고 내려오면 살려준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려가자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그대로 있다가 동생을 데리고 집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손을 들고 군유산 아래로 내려가셨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은 내려온 사람은 일렬로 세우고 총살하였는 데 확인사살까지 하였다고 합니다.껴5) 박태종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참고인 김남수는 다음 과 같이 진술하였다. 73) 참고인 장갑순 진술조서(2009.5.29.) 74) 북성리 승선동은 군유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며, 승선마을 • 월천리 어전 • 손불면 소재지와 승 선마을 •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 · 해안마을 • 신광면 소재지가 나뉘는 곳으로 사건 당시 이곳에 서 경찰이 피난민을 선별하여 총살 후 확인사살까지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 결정서 180쪽 〈표 l} 사건지역도 손불면 참조 75) 선 첫 <;>1 박선자 진술조서(2008.5.8.) - 6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