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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군서면에 살았던 서승일(다-8848)의 아버지 서균선은, 동생이 국군에 입대 하여 ‘반동가족’으로 몰려 영광 백수면으로 피신을 하였다. 서균선은 그곳에서 소를 빼앗기는 등 고통을 겪자, 손불면 월천리 일공구마을 진외가로 피신하였다. 서균선은 1951년 2월 19일 군유산작전 때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학산리 지 호마을로 내려왔는데 경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다음은 서승일의 진술이다. “군유산작전 이전에 다들 ‘살려면 군유산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당일 일찌감치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고 어머니와 저는 사기마을 에서 경찰에게 잡혔다가 다음날 풀려나 일공구로 갔는데, 아버지와 삼촌은 지호마을에서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삼촌은 도망쳤지만 아버지는 경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시신은 이름이 선동인 분이 일공구에 살았는데 이 분이 지 호에 갔다 오다가 보았다고 말해주어 수습하였습니다."70) 서균선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사촌동생인 참고인 서일섭은 “서균선은 영광 군 서면 송학리에 살았는데 백수면 하사리를 거쳐 함평 손불면 월천리 일공구 마을로 피난을 가셨다. 서균선이 경찰에게 죽었다는 것은 그 사건 직후 그분 의 부인을 통하여 알았다”고 진술하였다.11) 양재리 장재동과 인접한 영광 염산 오동리 복룡 주민들도 경찰의 진입이 시 작되자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장길석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나갔다가 평 암골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았다. 다음은 아들 장성수(미신청)의 진술이다. “사건 당일 경찰이 복룡마을에 들어오자 아버지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고 들었습니다. 군유산에 올라갔을 때 경찰이 올라오자 월암산과 영광방향인 평암골로 피난하였는데, 아버지는 평암골로 가시다가 경찰의 총격을 받았다 고 합니다. 월암산으로 가셨던 분들은 다치지 않았는데, 평암골에서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72) 사건 당시 장길석과 함께 복룡마을에 살았던 장길석의 동생 장갑순은 장길석 과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장갑순의 진술이다. 70) 신고인 서승일 진술조서(2008.6.9.) 71) 참고인 서일섭 진술조서(2α>9.6.12.) 72) 참고인 장성수 진술조서(2008.6.10.); 누구에게 들었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는 경찰이 끌고 가려하였으나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총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었다 - 6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