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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내상65)(다-4283)의 형 전연상, 전상범(다-4284)의 삼촌 전홍범 · 전홍섭은 1951년 2월 19일 주민들과 함께 군유산으로 피난을 나갔다. 신청인 조연신은 “형님 조성신과 전연상, 이판술, 전홍범 • 전홍섭 형제, 조성순6이 등이 함께 군 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군유산 정상까지는 같이 올라갔지만 정상에서 경찰이 총을 쏘자 모두 흩어졌고 조성순만 살아 돌아와서 조성순에게서 이야기를 들 었다”고 진술하였다.67) 농장마을 박관규(다-4563)의 아버지 박윤휴는 인민군에게 협조하였던 것 때 문에 1951년 2월 19일 경찰의 작전이 시작될 무렵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박윤휴는 3일 뒤인 2월 22일 경찰에게 잡혀 군유산 정상으로 왔다가 다른 14 명과 함께 묶인 채 ‘산당고랑’에서 살해되었다. 다음은 박관규의 진술이다. “숙부의 처남이 경찰이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숙부한테 피신을 왔고 아버 지는 이 분들을 살리기 위해 인민군에게 협조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때문 에 군유산작전 때 피신하였습니다.3일 뒤 아버지는 경찰에 잡혀 손불지서로 연행되었고, 먼저 연행되었던 어머니가 이를 목격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경찰 이 선별한 14명과 함께 포박당한 채 한청사무소 끌려갔고, 어머니가 다음날 산당고랑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갯8) 박윤휴의 사촌으로 사건 당시 마을에 있었던 참고인 박노진은 사촌형 박윤 휴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박윤휴는 동네에서는 박노연이라고 불렀습니다. 군유산작전이 끝난 며칠 뒤 한청대원 6, 7명이 집에 와서 산당고랑으로 끌고 가 죽였습니다. 동네에서 꿀려간 사람은 없으나 산당고랑으로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시신 10여 구 가 묶여 있어서 끈을 자르고 시신을 찾아와 수습하였다고 합니다갯9) 65) 신청인 전내상은 자신의 형 전연상이 군유산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대동면에서 살해되었다고 진술 하였으나 다른 신청인들은 5명 모두가 군유산에서 불갑산으로 연행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으며 시신은 찾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66) 신청인 조연신은 주민 조성순이 이판술, 조성신, 전연상, 전홍범 · 전홍섭 형제 등과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다가 진실규명대상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전문 진술이 있어 조성순 의 생존여부를 확인하였으나 2006.4.22. 사망하여 조성순의 진술은 청취하지 못하였다. 조사4팀-973 67) 신청 인 조연신 진술조서(2008.5.21.) 68) 신청인 박관규 진술조서(2008.5.19) 69) 착고인 박노친 지숭조서(2애19.5.2lU - 6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