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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반란군들은 감물을 들인 옷을 입고 다녔고, 미숫가루 전대를 메고 다녔는데 박강진도 감물을 들인 옷에 미숫가루 전대까지 차고 피난을 갔다가 군유산 정상에서 경찰에게 갑혔다고 들었습니다. 감물을 들인 옷 색깔에 전 대를 메고 간 것 때문에 연행된 것으로 보이며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박 강진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걸 목격한 사람 중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박남윤 인데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62) 나)월천리 북성리 아래인 월천리 어전마을에 살았던 양칠석, 양삼자(다-4285), 양삼두 형제도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 군유산 중턱에 도착한 양삼자 형제는 굴속에 숨어 있었는데 뒤따라온 경찰이 손을 들고 나오라고 하였고, 손을 들고 나오 던 형 양칠석(당시 21세)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양철석의 사망사 실에 대한 양삼자의 진술이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 경찰이 군유산 정상으로 올라가라고 하여 저도 올 라갔습니다. 군유산 정상에서 경찰은 젊은 사람 중에서도 행색이 이상한 사람은 골라내어 다른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뒤 내려가라고 하여 저는 북성리 승선마을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형님 양칠석의 시신은 다음 날 저와 집안 어른들이 현장에 가서 수습하여 묻었습니다."63) 양칠석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양삼자와 함께 군유산에 피난을 갔던 동생 양 삼두의 진술이다. “어전마을에서 북성리 승선 • 차경 · 은행동을 지나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때까지는 칠석, 삼자형님과 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승선마을 앞 으로 내려올 때 하천에 시신이 즐비한 것을 보았는데 대부분 25세 전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나온 피가 하천에 붉게 흐르고 있었 고, 그 분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있어서 하천이 하닿게 보였습니다"없) 신기마을 최화님(다-4281)의 시숙부 이판술, 조연신(다-4282)의 형 조성신, 62) 참고인 박병규 진술조서(2009.5.26.) 63) 신청 인 양삼자 진술조서(2008.5.21.) 64) 참고인 양삼두 진술조서(2009.5.2꺼 - 6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