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page

두 죽이니 피난을 가야한다”는 지방좌익들의 선전을 반복해서 들었고 실제 12월 12일 작전 이후에는 거주마을에서뿐만 아니라 소개 지역에서도 청장년 들이 경찰에게 연행되어 살해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가족 중 부역자가 있는 주민은 불안한 생활을 하였다. 이 상황에서 1951년 2월 19 일 경찰이 마을에 총격을 가하면서 진입하자 주민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49) 3. 사기별 • 지역별 사건 가. 1951년 2월 19일 군유산작전 이후 사건 〈그렴〉 군유산 인근 지역도 49) “당시에는 반란군들이 피난을 가지 않아도 죽였습니다. 피난을 가지 않으면 경찰 편이라고 죽이는 시대였습니다" 참고인 이말례 진술녹취(2009.1.13.) - 6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