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page

II. 조사결과 1. 사건의 배경 함평군은 전라남도의 북서부지역에 위치하며 광주광역시 및 나주시, 장성 군, 영광군, 무안군 등과 접하고 있다. 함평군은 함평읍, 월야, 해보, 나산, 대 동, 손불, 신광, 학교, 엄다면 등 1읍 8면이며 ‘함평지역민간인희생사건’은 손 불면과 신광면에서 발생한 사건이 타 지역 사건에 비하여 많다. 함평군 관내에는 불갑산(해발 515m)과 군유산(해발 403m)23)이 있는데, 이 들 산간지역에서는 여순사건 무렵부터 빨치산이 출몰하여 음식물과 식량 등 을 가져갔다. 빨치산 출몰은 경찰과 국군2씨이 토벌작전을 펴는 계기가 되었 고 작전 중에는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다.25)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후 함평에 인민군이 처음 진주한 것은 4주 일 후인 7월 23일이었다.26) 1950년 10월 22일 국군에 의한 수복작전이 시작 될 때까지 3개월의 인민군 통치가 있었다.27) 1950년 10월 22일 국군 제 11사단 20연대 3대대의 함평 진주 후 본격적인 수복작전이 펼쳐졌는데 11월 중순부터는 제2대대 5중대가 해보면 문장에 주 둔하면서 월야 • 해보 · 나산면 등 동부 3개면에서 토벌작전을 벌였다.28) 토벌작전이 본격화하자 빨치산 등 좌익세력은 불갑산에 집결하면서 군유산 까지 활동반경을 넓혔고, 경찰도 1951년 2월 19일에는 군유산작전, 2월 20일 에는 국군과 합동으로 불갑산 토벌작전을 펼쳤다.2어 한편 1950년 10월 말부터는 토벌작전에 밀린 무안 등 언접지역의 좌익도 군유산 인근인 손불 북성리에 아지트를 만들고 주민과 함께 생활하였다.3이 23) 군유산의 남쪽은 손불면 북성리, 신광면 송사리와 북쪽 영광군 군남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함 평에서는 불갑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함평군사편찬위원회, 『함평군사.1 2, 1999, 80쪽. 24) 1948년 10월 30일 호남방면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여 사령관에 육군준장 송호성을 임명함과 동시에 지구를 남북지구로 구분하여 북부사령관에는 원용덕 대령을, 남부사령관에는 김백일 중령을 임명 하고 예하에 제4, 제9, 제12연대의 2개 대대 ... (후략). 육본정보참모부, 『공비연혁J, 1971, 238쪽; 제4연대는 1946년 12월 15일 전라남도 광산군 극락면 쌍촌리에서 창설되어 1948년 11월 20일 제 20연대로 개편되어 6여단에 예속되었다. 보병제 11사단, 『화랑부대전사JJ, 1986, 13쪽. 25) 참고인 김채섭 진술조서(2008.8.21.) 26) 함평군사편찬위원회, 『함평군사JJ 2, 1999, 35쪽. 27) 진실화해위원회, 함평수복작전민간인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2008.4.14.) 28) 진실화해위원회, 함평11사단사건 진실규명결정(2007.7.8.) 29) 진실화해위원회, 불갑산지역민간인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2008.12.23.) 3이 참고인 박병규 진술조서(2009.3.19.) - 6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