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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경찰서 보안과장은 조흥현이었으며 신광지서장은 수복 직후부터 나성남이었음. 구국연맹 사무실은 경찰고지에 따로 있었는데 연맹원의 늘고용멸 ←、산 보급부대원으로 선을 대주는 을 개척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였음. 손불면에서 군유산 밑에까지 벼를 지고 두 번 정도 갔는 데 산에는가지 않았음. 빨치산 조직은 모르고 동네에 었으면서 연락하고 심부 름을 하였음. 대동면 운교리 판교에 있었는데 연락이 오 지 않으니 작전을 다녔음. 길 진 술 녹 취 2α>9.5.25. 해보 백양의집 임순배 (22) 보 급 부 대 원 119 다. 경찰 측 참고인 조사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당시의 사건 지역 주변 상황을 청취하기 위하여 사건 당시 경찰, 의용경찰, 대한청년단원으로부터 참고인 진술을 청취하였는 데 결과는 〈표 4>와 같다. 〈표 4) 경찰 측 참고인 조사 남경찰국 기동대까지 참여하였음. - 본국 기동대는 1개 대대 병력이 300, 400명인데 최소 진술|함평 1 150명 이상이 군유산 작전에 참여하였음. 녹취!의경 1- 군유산은 민간인들로 꽉 랐는데 함평경찰은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전을 하니 민간인을 산 고랑으로 몰아넣은 것임. 정보만 제대로 있었어도 피 해는줄었을 것임. - 경찰모집이 있었을 때 응모하여 의경이 되었는데 서 장이 순경으로 뽑아서 기동대에서 근무하였음. - 함평 수복 무렵 경찰 70, 80명이 와 일부는 대통면 정 창까지 갔는데 다시 퇴각하였다가 3일 후에 들어왔 진술|함평| 음. 수복당시 기동대는 100여 명이었는데 증원되었음. 녹취 |경찰 1- 당시 기산봉엔 빨치산인지, 민간인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싸울 수가 없었음. -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은 이장이었음. 형 사계에서 마을에 밀대를 두고 정보를 받았는데 잘못 면 엉뚱한 사람이 다쳤음. - 656 - 2008.9.21 참고인 자택 2α)7.12.6. 참고인 자택 임봉섭 (2이 정금용 (16)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