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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참고인 자택 71 1 4419 동네에 살 I ~l_"'l ,_) 12009.6.18. I ~l À I았음. 그 사람드은 함평경찰서 기동대들이 총살하였음. 당 8488, I 강해선| |진술| 」E 72 | | | 광주 | |시 북성리예- 지방좌익이 모여 있어 기동대가 군유산작 8489 I (21) I 상무병원 |녹취 |전을 하고 냥 뒤 북성리에 있던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선 별하여 총살하였음. 김길호의 아버지 김동열은 월야면 외치리 외치재에서 경 120?9.6.~6. 1 7.-1술찰에게 죽었는데 처날 경찰뼈행하였음. 반란군에게 밥 박화선| π |조 !。 z 」 亡 』 73 I 3619 I ' ,:: 1...: I 주 고인 | 샤 |늘 해T었다고 김동열 김T원 장싹쇄아 본인 등 네 분이 (2끼 | μ |조서| | 자택 1 _._ 11월야지서로 연행되어 시어머니의 동생이 의경이어서 본인 만살아오고 세 분은 - 경찰에게 불려나가 살해되었을 , ,데 늦가을 한밤중 총소리가 들렸고, 다음날 양윤초와 경찰 ‘ 12α>9.6.16. 1 _, ~ 1 5611, I 황봉채| |지술|이 여행하여 오 다른 동네 2명이 마을 앞에서 총살된 것 74 l | | 용정리 | 」 | 。 ‘L..:. 0 - , 1 "L- 5615 I (14) I ~10 0 :~~, I조서 I~ 브았A 장성환으 1녀 뒤 경찰에 연행되어 죽은 것을 I V 'TJ I 마을회관 | |E · 」 1 1알고 있음. 장성환은 예덕리 망가촌 처가에 있었는데 방아 를 찔던 중 월야지서 경찰에 연행되어 11 1951년 대보름 , ,이후 정판근, 장동섭, 김남수 등과 함께 월야지서 경찰 김 2α>9.6.16. 1 _, ~ 1 참고이 l진술I~~에게 연행되어 면소재지로 나가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 !조서 |얼마 뒤 소재지 방향에서 총성을 들었음. 정재인은 월야지 자택 I _._ '1 I I서 의경이었는데 함평경찰서 요구로 경찰서에 출두하였다 돌아오지 않고 , , v 성리 방축에 살았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 이영기의 12α>9.6.19. 1 _, ~ 1 김동일| 1 1 |진술l형 이동준과 한 좌석에 있었음. 청년 10여 명이 모여 있었 76 1102171 .... ,_":..= 1 ~.ïL<?l 1 ~~ 1 (23) I P ζ |조서|느데 수찰 중인 경찰이 인기척을 냈고 인기척에 놀란 이 | 자택 l |」 } l |동준이 도망하자 경찰이 총격을 가하여 사망하였음. 1 1결혼하여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김광숙이 죽었는데 집안 12α>9.9.10. 1 _, ~ 1 노덕례 | |진술|아저씨빨이 김광숙을 마을에서 김홍만으로 불렸음. 김홍 77 , 8080 ,~.~,~II , 지실화해 | ! n· (18J l 」 |조서 l마은 경찰이 빨갱이라고 연행하여 산 밑에서 살해하였는 | 위원회 | |L l |데 그때가 밀을 벨 무렵이었음. ‘이계병의 다른 이름은 이계춘이고 해보면 운콕에 살았음. 윤기병 1 2008.8.22. 1 진술1당시에는 용천사에서 문장을 가기 위해서는 모평 앞을 지 78 I 3921 1 '-'-.~~, v 1 :~~~.:-::. 1 ~ ~ 1 (20) 1 함평군청 |조서 |나야 하는데 그 길목인 쌍구룡 주막에 있으면서 이계병이 연행되어 총살되는 것을 목격하였음. 윤춘하는 사촌형님이고 윤춘식은 3살이 적음. 윤춘식은 집 12아>9.4.22. 1 _, 1 1 윤병옥 l |진술 l에서 누에를 키웠느데 경찰이 작전 뒤 나가면서 죽였고, 79 1 2956 1 ~(2;)' 1 잠고인 |녹취|윤추하는 그 뒤 시광 삼덕리 새납골에서 경찰에게 죽었음 1 자택 | 1 ) L I I윤춘하가 경찰에게 살해되는 것은 목격하지는 않았으나 짧 % 정 ( m 없쩍 없 뼈 π j양 - 6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