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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단원의 진술을 청취하였고 사건관련 문서, 그리고 당시 사건과 관련 보도 를 하였던 신문 둥의 자료조사를 통하여 사건을 파악하였다. 가. 신청얀 조사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4월 9일부터 2009년 8월 5일까지 신청인 164명에 대하여 진술을 청취하였으며, 주요 진술은 〈표 2>와 같다.13) 〈표 2) 신청언 주요 진술 (손불면) 남편은 아들을, 나는 딸을 데리고 군 유산에 피난을 갔으나 길이 엇갈렸음. 2614 심안순 전병일 남편 2008.8.19. 진술 남편과 같이 갔던 아들이 주민과 함 (1924) 함평군청 조서 께 와 남편의 사망사실을 말해주었음. 시신을 수습할 때 보니 남편의 시신 은 바위 위에 있어 불에 타지 않았음. 영광과 함평경찰 기동대가 협공하여 ~ol각 1L: 2008.5.8. 진술 몰려다니다 북성리 사기 뒤로 내려왔 2 3649 (1939) 김희권 부 함평군청 조서 음. 경찰이 행색이 이상한 사람은 골 라내어 총살하였는데 아버지도 총살 당하였음. 숙부는 군유산 중턱에서 총격을 가하 니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내려오던 중 김재수 김동운 숙부 2008.5.9. 진술 사기마을 아래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 3 4276 망하였음. 현장은 궁산리 김상길이 (1933) 김정연 사촌형 함평군청 조서 목격하여 시신은 수습하였음. 사촌형 은 작전 뒤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자 바닷가로 도주하다가 총에 맞음. 아버지와 같이 피난을 갔는데 군유산 4 4277 남수남 남삼자 부 2008.6.24. 진술 봉우리 아래 절터에서 경찰의 총을 (1945) 함평군청 조서 맞고 사망한 것을 고종사촌 오빠와 중부(때父) 남희일이 수습하였음. 시숙부는 조성신, 전홍범 · 전홍섭 형 5 4281 최화님 이판술 시숙부 2008.5.21. 진술 제, 전연상과 군유산에 피난 갔다가 (1945) 함평군청 조서 경찰에게 끌려갔으나 돌아오지 않았 I。1. 6 4282 조연신 조성신 혀。 2008.5.21. 진술 형 조성신은 전홍범 • 전홍섭 형제, (1936) 함평군청 조서 전연상, 이판술, 조성순 등과 군유산 13) 신청인 187명 중 진술거부, 사망 등으로 조사할 수 없었던 6명을 제외한 181명으로부터 진술을 청 취하였는데 12건은 추후 처리할 예정이다. - 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