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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끌고 갔으며 당시 눈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누나가 신발도 선지 못한 채 버선발로 끌려갔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299) 그 후 가족들은 조옥녀가 용천사에서 희생당했다는 소문만 듣고 시신수습은 하지 못 했다}OO) 이로 볼 때 조옥녀는 경찰부인이라는 이유로 빨치산에게 끌려가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301) 22) 냐산면 초포리 이정범 희생사건(마-2608, 1951.2.2.) 1951.2.2.(음력 12.26) 나산면 초포리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이정범(李正範I 21) 이 빨치산에게 끌려가서 행방불명되었다. 신청인 이정순에 의하면 오빠 이정범은 포목장사를 했고 “경찰과 친하고y 좌익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반동”으로 몰렸다고 한다. 사건 당일 이정범은 당시 /청방사무소/ 가 있던 나산국민학교를 습격한 빨치산들에 의해 불갑산으로 끌려갔으며y 그 후 가족 들은 빨치산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소문을 들었고 시신수습은 하지 못했다.30깅 참고인 000 역시 이정범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포목장사를 했고/ 이정범의 고 종사촌인 이계손이 경찰이어서 빨치산들이 노리고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정범과 6촌사이인 참고인 000 의 진술은 신청인의 진술과는 약간 다르 다. 신청인은 당시 빨치산들을 피해 마을사람들이 /청방사무소l가 었던 나산국민학교로 피난을 갔다가 습격한 빨치산에 의해 이정범이 끌려갔다고 했다. 하지만 이요범은/ 이 정범이 평소 나산면이 아년 함평읍에 거주했고 좌익 쪽에서 활동하던 이정범의 부인이 청방사무소에 구금되어 있자 그 면회를 갔다가 나산국민학교를 습격한 빨치산들에게 끌려갔다고 했다. 사건 당일 참고인 본인의 집으로 이정범이 끌려온 뒤에 다시 어디 론가 끌려갔기 때문에y 이정범이 끌려가던 당시 모습을 목격했으며y 이후 불갑산으로 끌려가서 희생당했다는 소문만 들었다고 한다.303) 이로 볼 때 이정범은 사촌이 경찰이라는 이유 및 좌익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 299) r신청인 조성용 진술조서 (2008.2.28) J 300) r신청인 조성용 진술조서 (2008.2.28)J 301) r피해연구보고서」 에 조옥녀는 “조성관의 누나”로 기재되어 있는데, 제적등본에 의하면 조성관은 신청인 조성용의 동생이다. 302) r신청인 이정순 진술조서 (2008.2.20)J 303)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8)J ; 참고인 000은 사건당일 이정범과 같이 그 부인도 끌려 갔는데 부인은 살아왔다고 진술했다. - 5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