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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 선광면 복흥리 섬기택 희생사건(마-5030, 1951.1.10.) 1951.1.10.(음력12.3) 신광면 복흥리 복치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섬기택(沈環 澤, 42)이 빨치산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되었다. 신청인 섬상윤은y 아버지 심기택이 신광면의 소방대원으로 활동했으며I 1950.1.7.(음력 11.3이 용천산의 빨치산들이 진주봉 소재 부대를 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작전에 동원 되었는데y 작전이 끝나고 후퇴하는 중 용천사에 있는 빨치산 잔당들한테 잡혀가서 행 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기를 청년대장하던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294) 그 후 심기택의 일가친척 가운데 좌익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심기택의 사망사실을 알 려주어서 사망 일자를 12.3로 알고 있으며 시신수습은 하지 못했다.295) 참고인 000은, 심기택이 한국전쟁 발발 전에 마을 일을 맡아했던 사람이었고,296) 참고인 000은y 심기택이 경찰 측 일을 도왔다는 이유로 희생당했을 것이라고 진술 했다.297) 이로 볼 때 심기택의 “우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빨치산에게 끌려가 용천사에서 희 생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1) 대동면 용성리 조옥녀 희생사건(마-6529, 1951.1.22.) 1951.1.22.(음력 12.15) 대동면 용성리 구룡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조옥녀(趙 玉女, 20)가 빨치산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되었다. 조옥녀의 가족은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해방이 되자 대동면 용성리로 와서 살았다. 한국전쟁 발발 2개월 정도 전에 조옥녀는 영광경찰서에 근무하던 사람과 결혼했는데y 결혼식만 올리고 조옥녀는 대동면 용성리에 있는 친정에서 그대로 살고 있었다.298) 신청인 조성용은 음력 12월 보름y 빨치산들이 집을 습격하여 자고 있던 누나 조옥녀 294) 신청인 심상윤은 아버지 섬기택이 경찰들과 같이 작전에 참가했다고 진술하였으나 관련 내용의 참 고인 진술 및 자료는 확보할 수 없었다. (2008.2.19) 295) r신청인 심상윤 진술조서 (2008.2.19)j ; 참고인들은 신광면 복흥리는 타성(他姓)이 없었고, 그 가 운데 진실규명대상자인 심기영, 심기운, 심기택을 제외하곤 좌익계통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 분이었다고 한다. 296)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8)j ; 참고인 000은 당시 마을사람들이 영광군 군남면으로 모두 피난을 갔는데 심기택만 안 가고 있다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2009.4.8) 297)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8.5)j 298) r신청인 조성용 진술조서 (2008.2.28)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2.24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2.25)j ; 제적등본 상 조옥녀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 5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