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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수습은 고판문의 가족들이 했으며y 고판문의 딸 신청인 고안순은 시신수습 현장 을 목격했다.2잃) 1η 손불면 주포 김성옥 희생사건(마-4422, 1951.1.5.) 1951.1.5(1950.음력11.28) 손불면 석창리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김성옥(金成玉I 2끼이 손불면 주포(酒浦)지서 근처에서 야경을 서다가 빨치산에게 희생당했다. 당시 김성옥은 빨치산들을 피해서 지서가 있는 주포(酒浦)로 피난 가 있었다.284) 참고인 000은I 당시 젊은 사람들이 주포지서에서 야경을 섰는데 사건당일 김성옥 이 야경을 서다가 빨치산들이 들이닥치자 그들을 피해서 집으로 잠시 피했다고 한다. 二l 얼마 후 누군가가 “빨치산들이 다 갔으니 다시 보초를 서러 나오라”고 해서 다시 야경을 서러 나갔다가 김성옥이 희생당했으며y 도끼로 머리를 맞아 희생당한 김성옥의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285) 참고인 000은 김성옥이 한청단원이었으며y 신을 목격하고 그 근처에 대충 묻었다가 나중에 역시 도끼로 이장했다고 머리를 맞은 김성옥의 시 한다.286) 18) 손불면 북성리 김도보 가족 4명 희생사건(마-3929, 1951.1.7.) 진실규명대상자 김도보(金嗚南, 38, 일 김양섭(金良燮, 15, 일명 김연섭), 갓 북성리 사기마을(일명 사구실)에 1951.1.7.(음력11.30) 손불면 산남리에 거주하던 명 김학보)과 그 부인 김업례(金業禮, 35), 큰 아들 난아기(성명불상) 등 4명이 빨치산에게 끌려가 손불면 서 희생당했다.287) 가져다가 파는 일을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끌려가 희생당했다.288) 당시 생계수단으로 김도보의 부인 김업례가 함평읍에서 담배를 했는데y 그 때문에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는 첩자 노릇을 한다는 그 이유로 김도보 가족 4명은 군유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에 의해 283) r신청인 고안순 진술조서 (2008.3.12)j 284)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2)j ; 신청인의 김동주의 경우, 부인 박덕임과 알고 있는 내용이 똑같다는 이유로 그의 부인의 진술로 대신했다. 박덕임은 나중에 묘를 이장할 때 보니 시아버지인 김성옥의 머리가 깨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285)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6)j 286)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9)j 287) r신청인 김상수 진술조서 (2008.4.4)j ; r참고인 진술조서 (2009.3.17)j 000 진술조서 (2009.3.17)j ; r참고인 000 288) 참고인들은 김도보를 김학보로, 큰 아들의 이름을 김양섭이 아닌 김연섭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 5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