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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끽 해보면 산내리 윤성중 희생사건(마-3630, 1950.12.24.) 1950.12.24. 해보면 상곡리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윤성중(尹聖重, 42)이 빨치산에 의해 해보면 산내리 원산마을로 끌려가 희생당했다. 윤성중의 집안이 농사를 많이 짓는 등 동네에서 손꼽히는 재산가였고y 윤성중의 아 들 윤석근(신청인)이 학도대에 있었다고 하며 윤석근의 사촌이 경찰이었다. 이런 이유 로 인해 윤성중은 당시 빨치산들의 잦은 출몰에 위험을 느끼고 광주로 피난 나가 있다 가 사건 당일 상곡리의 집으로 오던 길에 빨치산에게 끌려가서 희생당했다 2없) 윤성중의 시신은 희생당한지 한참 후에 수습했는데/ 윤성중이 희생당하는 현장을 목 격한 사람이 있어서 희생 장소를 알려준 덕분에 시신을 수습해올 수 있었다고 한다)65) 13) 신광면 가덕리 김재근y 박동근 희생사건(마-1050, 2239, 1950.12.25.) 1950.12.25.(음력11.1η 신광면 가덕리 가리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김재근(金 在根, 55)과 박동근(朴東根, 39)이 마을 앞 논에서 빨치산에게 희생당했다.266) 사건 당일 김재근이 야경을 서고 집에 들어와 있었는데y 빨치산들이 마을을 포위하 자 마을사람이 김재근 집 대문을 두드리며 “반란군 왔다”라고 소리치고 도망쳤다. 그 소리를 들은 김재근이 밖으로 나가다가 빨치산에게 잡혀 논에서 칼로 손y 발f 목 등이 잘려 희생당했으며y 시신수습은 김재근의 부인이 했다 26η 참고인 000은y 마을 사람 누군가가 경찰에 밀고(구체적인 내용은 모름)를 한 일이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반란군들이 몰려와서 “동네사람 한 명을 손 발 잘라놓고 가버 린 일이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동네사람은 김재근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박동근은 김재근의 바로 옆집에 살았는데/ 박동근도 야경을 서다가 빨치산에 의해 마을 앞에서 죽창으로 찔려 희생당했고,268) 시선수습은 그 집안사람들이 했다.269) 264)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J;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 J 265)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J;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 J ; 참고인 000의 진술에 의하면, 윤성중이 희생당하던 당시 상황을 목 격한 사람은 상곡리 모산마을에 거주하는 노씨인데, 희생당한 장소만 가르쳐주었을 뿐 그 외에 대 해 일절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성중의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금이빨 2개로 시신을 확인하고 수습해왔다고 남편 윤석근(신청인, 사망)으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2009.5.27) 266) 신청인은 박동근이 음력 11.18. 박재섭 등과 함께 대동저수지로 끌려가 희생당했다고 했으나, 참고 인 000 , 000 , 000 등이 박동끈은 마을에서 희생당했으며 박재섭 부부가 끌려가기 전에 희 생당했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김재근과 같은 날 마을에서 야경을 서다가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267) I신청인 서연순 진술조서 (2008.4.22)J - 5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