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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많이 맞았고잭끼 박재용의 동생언 신청인 박길용도 당시 빨치산들에게 많이 맞았 다고 진술했다.258) 박재용은 당시 함평농고를 다녔으며l 경찰가족이라는 이유로 인해 끌려간 것이라고 한다.259) 신청인은 형 박재용이 끌려간 것은 음력 8월 추석 무렵이었다고 했으나 참고인 00 O은 “마을이장이던 박일규가 음력 9.11.(1950.10.21.) 좌익들에 의해 월천리 고랑에서 희생당했는데 박재용이 끌려간 것은 그 20여일 뒤”라고 진술했다.260) 미신청희생자 박일규의 희생사실에 대해서는 참고인 000 의 진술로도 알 수 있다. 참고인 박병규는 인민위원장 000 의 지시로 당시 면장을 하던 사람과 함께 박일규가 희생당했다고 진술했다.261) 그리고 ß'"6.25사변피살자명부』 에 “박일규(朴一圭)J 男J 40J 9.28. 손불면 월천리”에서 희생당했다고 기재되어 았다. 이로 볼 때 당시 마을이장이던 미신청희생자 박일규가 월천리에서 좌익들에 의해 지 방좌익들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1950.12.25.(음력11.1η 박재용과 일가(8촌)인 박경상 역시 어디론가 끌려가서 행방불 명되었다. 박경상의 처남이 영광에서 경찰을 했고y 작은 아버지 박귀근이 광양에서 경 찰을 했다.262) 사건 당시 영광에서 온 좌익들이 몰려와서 박경상을 찾으러 다녔는데y 참고인 00 O은 영광에서 온 좌익들이 첫째 날은 그냥 갔고 그 다음날 다시 박경상의 집에 왔는 데y 그 이후로 박경상의 모습을 볼 수 없어 그 때 어디론가 끌려가 희생당했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고 한다.263) 이로 볼 때 박재용과 박경상은 경찰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해 빨치산에게 끌려가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257)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9J ; 박경상의 사촌(작은아버지의 아들)인 참고인 。。。은 아버 지가 빨치산들에게 많이 맞았다고 진술했다. 258) r신청인 박길용 진술조서 (2008.6.25)J 259)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8.5)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8.5) J 260) 박재용이 끌려간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참고인 000의 진술이 가장 구체적이어서 본 보 고서에서는 그 진술에 따르기로 한다. 261)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8.5)J 262) r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3.19) 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3.19J ; 박길용은 ‘박재용 희생사건’의 신청인이자 ‘박경상 희생사건’의 참고인이다. 263) r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3.19J ; 현재 손불면 월천리에 거주하는 박경상의 사촌동생 000 은 부모로부터 박경상이 의용군으로 장흥유치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나 정황상 박 길용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