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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수의 아버지 정종석은 해보면장을 거쳐 함평군청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나 던 무렵 함평읍에서 I대서소r를 운영했는데 정 수는 그곳에서 일했다고 한다.23끼 정수의 작은 아버지 정희석23히은 일본유학을 했으며 해방 후 나산면 용두리에 돌아와서 나산고등공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13키 참고인 정덕희는, 1950.10.23. 함평수복작전 당시 언니 정순희가 군인에게 희생당한 사건 이 있었는데,240) 오빠 정 수는 대동면 향교리에서 살다가 나산면 용두리에 있던 할아버지 집 으로 피신했고y 희생시기는 언니 정순희가 희생당하기 전이라고 진술했다. 또 참고인 정덕희는 빨치산들에게 끌려가는 오빠 정 수와 작은 아버지 정희석을 보고 “할 아버지가 어쩔 줄을 모르고 펄쩍펄쩍 뛰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빠가 끌려간 이후 아버지도 얼마 못살고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진술했다.241) 그 후 신청인과 참고인들은 정희석과 정 수가 불갑산으로 끌려갔다는 소문만 들었으 며y 그 후 행방불명되어 시신수습도 못했다.2 42 ) 이로 볼 때 정희석y 정 수는 1950.10월경 우익인사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좌익들 에 의해 불갑산으로 끌려가서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η 손불면 학산리 백한봉 가족 4명 희생사건(마-5100, 1950.11.5.)2쟁) 1950.11.5.(음력9.26) 진실규명대상자 백한봉(白漢鳳, 26)을 비롯y 부인 김순례(金順禮, 33), 딸 백영순(白永淳,12), 아들 백영록(白永錄, 9) 등 일가족 4명이 빨치산들에게 희생 237)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3)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J ; 참고인들의 진술이 대개 일치하나 참고인들은 정 수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000는 아버지가 함평읍에서 ‘사법대서소’를 운영했고 오빠 정수는 아버지 사 무실에서 일했는데, 오빠가 사무실에서 도장 뭉치를 들고 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진술했다. 따라 서 본 결정서에서는 000의 진술에 따르기로 한다. 238) 정희석은 정 수의 아버지 정종석(장남)의 동생(사남)이다. 239)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 J ; 참고인 000은 나산고등공민학교를 정희석이 설립한 것이라고 진술했다(2009.4.29) 24이 「함평수복작전 민간인 희생사건」 에 의하면.000의 언니 정순희는 1950.10.23 희생당했다. (진실 화해위원회. 2008년 상반기보고서) 241)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3)J 242)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3)J ; 243) 이 사건은 처음에 군경에 의한 희생사건으로 ‘집단희생조사국’에 접수되었다가 2009.8. ‘민족독립조 사국’으로 이관된 사건이다. 신청인은 사건 당시 신청인은 어려서 잘 모르고 있으며, 참고인 000 와 면담 결과 백한봉 가족은 전쟁 전에 지호마을을 떠나 처가가 있는 영광군으로 떠났다고 한다. 따 라서 이 사건은 학산면 지호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영광군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하지만 영 광군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발생한 희생사건은 조사가 종결되었으며, 백한봉의 가족이 한국전쟁 직전 까지 손불면 학산리에서 거주한 점 등 ‘손불면 학산리 백한봉 가족 희생사건’으로 정리했다. - 5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