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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기운I 섬기영 희생사건(마-261τ 3647(1), 1950.10.28.) 1950.10.28.(음력9.18) 신광면 복흥리 복치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심기운(沈 模雲I 41), 심기영(沈媒英, 34)이 빨치산들에 의해 원산리 덕동마을로 끌려가서 희생당 했다. 심기운은 신광면에서 의용소방대장을 했고 심기영은 마을이장이었다.232) 신청언 심웅엽은r 아버지 섬기운이 빨치산에게 끌려가 덕동마을 000 의 집에 이틀 정도 감금되어 있다가 덕동마을 뒷산에서 칼에 찔려 희생당했다고 한다.233) 신청인 심기범은 형 섬기영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고 시신수습도 했다. 당시 형 심기영이 빨치산에게 끌려갔는데y 그 중 한 명은 군복에 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심 기영이 끌려간 이튿날(음력 9.19), 인민군과 폭도들이 후퇴하면서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 문이 나서 시신을 찾으러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가 원산리 덕동마을 뒷산에서 시신을 찾았으며y 그곳에는 심기영의 시신 외에 10여구의 시신이 더 있었다고 한다)34) 참고인 000은 원산리 덕동마을이 불갑산과 가까워서 빨치산들이 많았는데/ 불갑 산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다가 처치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덕동마을의 000 이 그 마을에서는 유지였으며 그 집에 빨치산들이 많이 집결했는데 심기영/ 심기운도 그 집으로 먼저 끌려갔다가 희생당했다. 그리고 시신은 참고인 본인의 아버지와 마을사람 들이 수습해 왔으며 참고인 본인도 시신을 목격했다고 한다.235) 6) 나산면 용두리 정희석I 정 수 희생사건(마-6742, 1950.10월경) 나산면 용두리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정희석(鄭熙錫, 36)과 그의 조카 정 수(鄭 洙I 24)23이가 1950. 10월 경 빨치산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되었다. 232) r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4.8)J ; r참고인 00 진술조서 (2009.4.8)J ; r신청인 심기범 진 술조서(2008.3.13)J; r신청인 심웅섭 진술조서 (2008.2.21)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7.1)J 233) r신청인 심웅섭 진술조서(2008.2.21)J ; 심웅섭은 아버지 심기운이 음력 9.19.에 희생당했고 제사가 음력 9.18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마-3647(1)의 신청인 심기범은 형 심기영의 시신수습을 직접 했는 데 그는 “형이 죽은 날이 음력 9.18이고 심기운이 같은 날 사망했다”고 진술했다.(2009.8.5). 따라 서 본 결정서에서는 섬기운의 희생일자도 음력 9.18이라고 판단했다. 234) r신청인 심기범 진술조서 (2008.3.13)J 235)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8) J 236) 신청서에 정수(鄭洙)로 신청을 하였고 참고인도 정수라고 진술하였으나, 제적부에 1940.7.2. ‘정정 일(鄭精-)’로 이름이 정정되었다고 기재되어 았다. 하지만 이미 주변사람들에게는 정 수라는 이름 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어 본 결정서에서는 신청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수라 표기하 기로한다. - 5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