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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낙균은 빨치산에 의해 새끼줄에 묶여 끌려갔으며y 참고인 000은 대창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시숙 조낙균의 시신을 시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사람들과 함께 수습해 왔 는데y 당시 희생 장소에 여러 구의 시신이 있었다고 진술했다.224) 임성환은 경찰가족이라는 이유로 빨치산에게 끌려갔는데, 임성환의 셋째 동생 임난 옥이 구례에서 경찰을 했고y 둘째 동생 임성옥은 함평에서 경찰유격대를 했다.225) 참고인 엄동옥은 형 임성환이 끌려가는 모습과 몽둥이로 뒷머리를 맞아 머리가 깨진 채 희생당했다는 말을 형수 남진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226) 김종순은 일본에서 살다왔으며 한국전쟁 당시 마을에서 구장을 했고 부유한 편이었 다.22끼 참고인 000은y 김종순 등 5명이 “대동저수지 상류를 거치고 신촌 안골을 거쳐 큰 봉 산을 넘어서 가(까)점 앞 산 고랑”에서 대창과 칼에 찔려 희생당했으며/ 처음에는 어디로 끌 려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신광면소재지에서도 희생당한 사람이 있어서 수소문 끝에 시 신 있는 곳을 알았다고 한다.228) 참고인 000은 시숙인 김종순과 같은 날 빨치산들이 김덕봉/ 조낙균y 박봉훤y 임성환 을 새끼줄로 묶어서 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했으며r 시신은 그 이튿날 시어머니와 동네사 람들이 들것에 싣고 왔다고 진술했다.229) 박봉훤은 “좌익 활동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좌익들에 의해 끌려가 희생당했 다)30) 사건 당일y 박봉훤은 밤에 자다가 집을 습격한 빨치산에게 손이 묶여 끌려가 죽창과 칼 로 온 붐이 찔려 희생당했고y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했다.231) 이로 볼 때 신광면 가덕리에 거주하던 김덕봉y 조낙균l 박봉훤/ 김종순y 임성환 등 5명이 이 장, 경찰가족l 좌익 활동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y 새끼줄에 묶여 신광면 원산 리 덕동마을(일명 까점)로 끌려가 죽창과 칼에 찔려 희생당했고y 시신은 각 가족들이 수습했다. 224)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8.3.13)J 225) I신청인 김재술 진술조서 (2009.4.7) 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8)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7)J;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8.5)J 등 226)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7) J 227) 참고인 000은 김종순이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나 신청인 김맹자는 아버지 김종순이 일본에서 일을 했다고 진술하는 등 서로 진술이 엇갈린다. 228)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7) J 229)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7)J 230)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7) J 231) 신청인과 진술면담이 불가능하여 신청서에 있는 내용으로 대체했으며, 박봉훤의 희생사실에 대해 서는 여러 참고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 5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