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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였다고 한다.208) 사건 당일 김연수와 그의 처남 이계성이 같이 끌려갔는데 이계성은 신광면소재지인 월암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209) 참고인 000는 아버지 김연수와 외삼촌 이계성이 죽창을 들고 온 빨치산 4-5명에 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따라가다가 마을다리에 새끼줄로 통행을 막아서 거기까 지만 보고 되돌아왔다고 한다.210) 김연수와 그의 처남 이계성이 끌려간 날은 음력9.17(1950.10.27.)이었는데, 그 다음날 인 음력9.18. 군인들이 신광면소재지에 들어왔다고 한다.211) 끌려간 김연수와 그의 처남 은 후퇴하던 빨치산에 의해 끌려간 다음날 불갑사 골짜기에서 희생당했다.212) 김연수의 시신은 김연수의 부인이 불갑사 골짜기에서 찾았는데 죽창 등으로 여러 차 례 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나 김연수의 금이빨을 보고 알았으며y 이계성 의 시신도 함께 수습했다.213) 이로 볼 때 김연수는 의용소방대장을 하는 등 지역유지였으며y 그로 인해 좌익들의 표적이 되어 희생당했고, 그의 처남 이계성도 김연수와 같은 날y 같이 끌려가 희생당했다. 5) 선광면 원산리 덕동마을 희생사건 본 사건들은 신광면 가덕리와 복흥리에서 각각 신청되었으나/ 신청인 및 참고언들과 면 담하는 과정에서 희생일이 1950.10.28.로 동일하고 희생 장소도 원산리 덕동마을로 동일하 다. 불갑사로 끌려가 희생당한 J김연수 희생사건'(마-4421)의 사건발생일 역시 1950.10.28.이 었다. 당시 1950.10.28. 신광면소재지에 군경이 진주하게 되자,214) 불갑산과 가까운 원산리 덕동마을에서 각 마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판단된다. 원산리 덕동마을 208) r신청인 김정환 진술조서 (2009.7.2)J 209) 김연수의 처남 이계성이 신광면소재지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는 것 외에는 추가정보를 얻을 수 없 다. 신청인 김정환은 “옥자 아버지”라는 것 외에는 이름도 모르겠다고 했다. 참고인 000는, 이계 성이 결혼해서 자녀가 둘 있었으나 행방불명되었고, 어머니가 영산포에서 시집왔다는 것 만 알 뿐 본적지는 모른다고 한다. 따라서 이계성의 제적등본 등도 입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계성이 김연 수와 함께 끌려가서 희생당했고 시신 수습도 같이 한 점 등 김연수와 그의 처남 이계성이 같이 끌 려가서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21 이 참고인 000는 아버지 김연수와 외삼촌의 시신도 함께 수습했다고 한다. (2009.6.18) 21 1) 참고인 000는 군인이 들어온 날 어머니가 군인들에게 밥을 해주기도 하고 아버지 시체라도 찾 아야 된다면서 군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러 다녔다고 진술했다.(2009.6.18). 212) í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6.18)J 213) í신청인 김정환 진술조서 (2009.7.2)J ; í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6.18)J 214) 신청인 심기범(마-3647(1 ))은 1950.10.28. “경찰”이 들어왔다고 진술했고(2009.8.5), 참고인 00 O(마-4421 )는 1950.10.28. “군인”이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 5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