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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한차례 대동면(장소미상)으로 끌려가서 죽창에 찔려 죽을 뻔 했는데y 그때 업은 상 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시 끌려가 희생당했다)87) 그 후 권승일은 숨어 지냈는데y 좌익들이 매일같이 집으로 찾아와 권승일이 어디 있 는지 말하라며 가족들에게 협박했다고 한다)88) 신청인 권오웅은 아버지 권승일의 시신을 대동면 향교저수지 뒤쪽 산에서 발견했는 데 당시 아버지의 시선 외에도 여러 구의 시신이 있었으며,189) 아버지의 시신은 신청인 이 인부와 함께 직접 수습했다고 한다.190) 『함평읍지』 에서 권승일이 당시 5대 함평면장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 며, 1959년 「전몰애국단체원대장」 에 “1950.10.22. 함평국민회간부y 함평군 함평면 기각리 867"라고 기재되어 있다.191) 한편/ 권승일이 희생당하기 며칠 전인 1950.10.19.(음력 9.9), 권승일의 조카며느리 전복순192)이 희생당했다. 전복순은 대동지서로 끌려가서 감금되어 있다가 “대동면 덕산리 외덕마을 고산동 올라가는 길목”에서 희생당했다)93) 참고인 000는 수레를 끌고 할머니와 함께 직접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으 며/ 당시 그곳에는 “온 산에 시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시 신이 있었으나 구체적인 신원은 알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94) 2) 손불면 손불지서 최오봉 희생사건(마-3643, 1950.10.24.) 1950.10.14(음력 9.14) 손불면 석창리 대덕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최오봉(崔 五鳳, 45)이 손불지서로 끌려갔다가 좌익들이 지서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는 바람에 희 생당했다. 187) r신청인 권오웅 진술조서 (2008.2.21)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7.1)J 188) 참고인 000는, 권승일의 딸과 둘째 며느리가 집에 있었는데 권승일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옷을 벗겨서 함평을 돌아다니게 할 거라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2009.7.1) 189) 신청인은 당시 사건 현장에 여러 구의 시신이 있었다고는 하나 구체적으로 누구의 시신인지 알 수 는 없었다고 한다. 19이 「신청인 권오웅 진술조서 (2008.2.21)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6.29)J 191) 권승일의 명단은 1r6.25사변피살자명부』 에도 등재되어 있다. 192) 전복순은 권승일의 바로 아래 동생 권호일의 며느리이다. 193)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7. 1) J 194)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7.1)J ; 함평에서는 1950.10.3. 공비들이 함평군 학교역과 사창역 사이 엄다면 영흥리 철교를 폭파하자 학교역 보선사무소의 김문화 등 5명이 선로를 보수한 일이 있었는데, 공비들이 그 5명을 10.19. 대동면 덕산리 외덕마을 앞 구릉에서 살해했다. ( Ir함평군 지J ). 이 사건의 희생일과 장소가 전복순의 희생일, 장소와 일치하는 것으로 볼 때 같은 날 발생한 희생사건인 것으로 판단된다. - 5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