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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되어 있었다. 그 후 이직헌을 비롯한 미신청희생자 6명은 재너머리에서 몽둥이로 맞아 희생당했다.16끼 이들의 시신수습은 그 가족들과 참고인 000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했으며y 제사가 음력 8.27.로 모두 같다 16히 이직헌과 같은 날 희생당한 사람은 의용경찰/ 군청직원y 대한청년단원y 기독교인 등 이른 바 /우익인사y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우익인사들이 인민군이 점령기 분주소로 끌려가 감금되어 있다가 언민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1950. 12월 경 대동면 덕산리 고산동에 거주하던 미신청희생자 이돈근(李敎護I 50)의 집에 빨치산이 습격하여 외양간에 불을 지른 후 소를 끌고 가고 이돈근은 대동 면 연암리 산기숨으로 끌려가서 희생당했다. 또 1951.2.12.(음력 1.7) 대통면 덕산리 고 산동에 거주하던 미신청희생자인 마을이장 이광헌(李光憲, 28)이 빨치산에 의해 해보면 대각리로 끌려가 희생당했다.16 키 6) 학교면 사거리 윤상연 희생사건(마-4570, 1950.10.12.) 1950.10.12.(음력 9.2) 학교면 사거리 율동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윤상연(尹 相連, 50)이 좌익들에 의해 율동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희생당했다. 윤상연은 마을에서 이장을 했고y 당시 그의 큰 아들 윤일형이 면사무소에 근무했다. 사건 당일 윤상연의 집으로 몰려온 좌익들이 윤상연의 아들 윤일형을 찾았으나 없자 윤상연을 대신 끌고 갔다. 윤상연은 사랑방에 있다가 율동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창칼 과 절구대로 머리를 맞아서 희생당했다.170) 신청인 윤순자는 당시 아버지가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고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했다.171) 167) 이직헌과 같이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단은 h"6.25사변피살자명부.J . r희생연구보고서」 에 등재되어 있다 r희생연구보고서」 에는 ‘이돈식’이 ‘대한청년단장’이 아니라 대한청년회 총무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 0"6.25사변피살자명부』 에는 이직헌의 한자이름이 “이칙헌(李則憲)"이라 기재되어 있지만 이직헌(李直憲)의 오기(誤記)로 판단된다. 168)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2.25)j ; r참고인 000/000 진술조서 (2009.2.25)j 169) r참고인 000/000 진술조서 (2009.2.25)j; 0"6.25사변피살자명부』 에 이돈근과 이광헌은 “구 장”이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17이 「신청인 윤순자 진술조서 (2008.6.5)j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6.10); r참고인 000 진술 조서 (2009.3.19);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2.23)j 171) r신청인 윤순자 진술조서 (2008.6.5)j - 5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