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η 손불면 죽장라 이주범 가족 3명 희생사건(마-3없4, 1950.8.20/1950.8.25.) 1950. 8월y 손불면 죽장리 장동마을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이주범(李周範, 31), 그 동생 이갑범(李甲範, 28), 그 어머니 나남산(羅南山, 60)이 좌익에 의해 희생당했다. 한국전쟁 발발 전l 지방좌익들이 이주범의 동생 이갑범의 집을 습격하여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이갑범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 지방좌익들 중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13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사망한 지방좌익의 친척 OOO(분주소원)이 좌익들을 이끌고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는다며 1950.8.12.(음력 6.29) 마을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을 유지 5명을 장동마을 모퉁이로 끌고 가서 한 줄로 세워놓고 이주범이 숨 어 있는 곳을 말하라고 하며 협박을 한 후y 제일 먼저 미신청희생자 윤상기(尹相基, 55) 를 총살시켰다. 윤상기와 같이 끌려간 나머지 4명 가운데 이주범의 사촌이 있었다. 이주범은 당시 선광면 계천리 실매마을에 숨어있었는데y 그 사촌이 이주범이 숨어있는 곳을 알려주자 다들 그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에 나머지 4명은 무사했고, 윤상기의 시선은 그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수습했다.136) 이 사건이 있은 후, 1950.8.20. 이주범의 어머니 나남산은 집을 습격한 좌익들에 의해 총살당했고/13끼 1950.8.25. 이주범과 이갑범 형제는 같은 날 해보면으로 끌려가서 희생 당했다.138) 나남산의 시신은 집에서 수습했고l 이주범l 이갑범 형제의 시신은 그 아버지 이상규가 해보면에 가서 수습했다.139) 이로 볼 때 이주범(李周範, 31)이 경찰이었고 한국전쟁 발발 전에 있었던 지방좌익의 희생에 대한 보복으로y 나남산은 죽장리의 집에서y 이갑범/ 이주범 형제는 해보면으로 끌려가서 희생당했다.140) 134) r신청인 임만택 진술조서 (2008.2.21 )J 135) 이주범이 외지에서 경찰을 해서 이갑범이 부모님을 모시며 살았는데, 이주범은 평소 죽장리에 거 주하지 않다가 한국전쟁 발발 후 죽장리 쪽으로 피신해 와 있었다고 한다. 국가보훈처 조회결과 이 주범은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있고 당시 “순경”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9.8.5/회 신 2009.8.17) 136)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2.25)J: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7.2) J 137) 참고인 000과 000의 진술을 종합하면, 미신청희생자 윤상기가 사망한 날 좌익들이 이갑범의 집을 습격해 나남산이 희생당하고, 역시 같은 날 이주범이 숨어있는 곳으로 몰려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상기의 희생일( 1950.8.12)과 나남산, 이갑범 형제의 희생일과는 8-13일간의 차이가 있다. 신청인 박종화는 시할아버지인 이상규로부터 사망날짜에 맞추어 정확하게 사망신고를 했다는 이야 기를 들었다고 한다.(2008.2.2이. 따라서 본 결정서에서는 신청인의 진술에 따르기로 한다. 138)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3.1 7)J : r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7.2)J 139) r신청인 박종화 진술조서 (2008.2.20)J 14이 「신청인 박종화 진술조서 (2008.2.20)J 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