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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월 가족의 시신수습은 집안사람들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했다.9이 이로 볼 때 안종월이 대한청년단원이었다는 이유로 인해, 안종월과 그의 어머니 박 점오, 동생 안종평/ 부인 최공엄이 좌익들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판단된다.97) @ 안동순 가족 4명 희생사건(마-4507, 1950.10.12.) 1950.10.12.(음력9.2) 나산면 나산리 방하마을에 거주하던 안종성(安鍾星, 62), 그 부인 김소녀(金小女, 43), 아들 안달수(安達洙, 23), 안동순(安東淳, 20) 등 진실규명대상자 4 명이 좌익들에 의해 나산다리 근처 제방에서 희생당했다.98) 참고인들은 안종성의 둘째 아들 안동순이 나산지서의 경찰이었으며,99) 경찰가족이라 는 이유로 희생당했다고 진술했다.100) 참고인 000는 사건 당일 저녁 무렵에 좌익들로부터 하천 둑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 고 안종성 부부가 나갔는데l 두 아들 안동순과 안달수가 이미 끌려와 있었고 거기서 안종성 가 족 4명이 희생당했다고 진술했다.101) 또 참고인 000은 콩밭을 매고 았다가 총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여러 명이 총에 맞 아 쓰러졌는데y 당시는 무서워서 웅크리고 앉아 있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 와서 소문을 듣고 그곳에서 안동순 가족이 희생당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했다.102) 그 후 참고인 000는 마을사람들 몇 명과 함께 안동순 가족의 시선을 수습하여 산 으로 옮겨 묻었다고 진술했다.103) 이로 볼 때 안동순이 의용경찰이었다는 이유로 안동순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4명이 나산다리로 끌려가서 희생당했다고 판단된다. 96) I신청인 안종래 진술조서 (2008.3.12) 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8)J 97) 1l'6.25사변피살자명부』 에 안종평과 박점오는 등재되어 있지만 최공임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98) 신청인과 참고인들은 안동순 가족의 희생 장소를 “삼축리에서 수하리로 건너가는 제방”, “삼축리 하천 둑” 등으로 표현했다. 나산면소재지인 삼축리와 나산리, 수하리 사이에 나산천이 흐르고 나산 다리(당시 木橋)가 놓여 있다. 신청인 및 참고인들이 말하는 곳은 결국 나산다리 부근을 가리키는 것이라 판단하고 안동순 가족 희생사건도 ‘나산면 나산다리 사건’으로 병합했다. 99) 전남지방경찰청에 안동순에 관해 조회를 의뢰했으나 관련기록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진실화해위 원회 2009.8.5./회신(2009.8.13). 안동순이 정식경찰이 아니라 의용경찰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10이 「참고언 000 진술조서(2009.4.29)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2009.4.29)J ;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 .29) J 101)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 J 102)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J 103) I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4.29)J ; 참고인 000(1924년생)는 “몇 년 전만 해도 기억이 또 렷했는데 지금은 늙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변, 누구누구의 시신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마을 사람들과 가서 직접 시신을 수습하고 매장했다고 진술했다. - 5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