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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월 가족 4명 희생사건(마-4946, 1950.10.11.) 1950.10.11.(음력9.1) 나산면 나산리에 거주하던 안종월(安鍾月, 24),89) 그 어머니 박점 오(朴러五, 4끼y 부인 최공엄(崔功任, 26),9이 동생 안종평(安鍾平l 15) 등 진실규명대상자 4명이 나산다리에서 희생당했다. 안종월은 대한청년단원이었고,91) 안종평(安鍾平)은 당 시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다.92) 신청인 안종래에 의하면r 한국전쟁이 발발 후 형 안종월이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함평이 수복된 줄 알고 희생당하기 이틀 전인 1950.10.9.(음력 8.29) 그의 동생 안종평과 함께 나산면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직 함평수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이리저리 숨어 다녔으며 나산리 방죽섬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끌려갔고y 안종평과 그 어머니 박점오y 부인 최공임은 집에서 끌려갔다. 그 후 나산리에서 삼축리로 이어지는 다리아 래서 어머니 둥 4명이 죽창에 찔려 희생당했다는 이야기를 집안어른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찍 참고인 000 의 진술에 의하면/ 마을에서 누군가 밀고한 사람이 있어서 좌익들이 안종월의 집으로 몰려와 그 집 사람들을 찾는다면서 동네사람들까지 다 나오라고 하는 등 동네가 떠들썩했었다고 한다. 그때 마침 안종월이 동생 안종평과 함께 광주에서 오 던 길에 나산다리로 끌려가서 희생당했다고 한다. 안종월과 안종평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그의 어머니와 안종월의 부인이 그 뒤를 쫓아가다가 희생당했으며y 당시 어머니 한테 안겨 았던 신청인(안종래)은 끌려가는 도중 동네사람한테 던져져서 살아났고, 안 종월의 어린 딸도 동네 사람한테 던져져서 살았다고 한다.94) 참고인 000는 당시 나산우체국에서 숙직을 하던 중y 안종평의 가족이 나산다리에 서 희생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진술했다.95) 89) 국가보훈처에 조회한 결과 안종월은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9.8.5/회신 2009.8.17) 9이 제적부를 확인해 본 결과 제적부 상 안종월의 부인은 박귀례(朴貴禮. 1923년생)이며, 최공임(崔功 任. 1925년생)은 “1952.9.15. 나주군 다시면 가흥리” 본적지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적등본 상 으로 최공임과 안종월의 혼인여부를 알 수 없으나 신청인 및 참고인 000은 고모 최공임이 안종 월과 혼인한 것이 맞다고 진술하였다. (2009.5.28). 본 결정서에서는 신청인과 참고인의 진술에 따르 기로 한다. 91) 신청인은 안종월이 “대한청년단원”이었다고 하고 참고인들은 안종월이 “경찰”이었다고 진술했으나, 국가보훈처의 기록에 의하면 안종월의 소속이 “애국단원”이라고 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안종월은 신 청인의 주장대로 경찰이 아니라 대한청년단원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92) í신청인 안종래 진술조서 (2008.3.12)J 93) í신청인 안종래 진술조서 (2008.3.12)J 94) í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J 95) í참고인 000 진술조서 (2009.5.27)J - 5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