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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원 중 고행함평군 니산면 삼축레 친구 나승엽(1924년생, 보도연맹에 가입)이 있어서 그와 대화를 하였다 나승엽이 ‘함평에서 예비검속 되어 목포형무소로 끌려 옹H二k 이곳에 수감 되면 잘 부탁 효H二F라고 말했다 이로보아 끌려 온 보도연맹원은 목포형무소 운동죠에 대기 중 일 때 까지도 목포형무소에서 징역을 살게 되는 줄 을댔치 처형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도연맹원이 목포형무소로 끌려온 당일 밤 모두 어디론가 실려 나갔는데 나 중에 알고 보니 배로 실려 나가서 모두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효!-Ct" -라고 진술하였다;28) 또한 사건 발생 당시 목포경찰서 000에 근무하였던 00는 “효벅전쟁 발발 후 19S)년 7 월 z3일 후퇴 전 어느 날, 목포교도소에 구금 중이던 국민보도연맹원(목포시를 포함한 인근지 역 연맹원)을 전남도경흘택 경비선 ‘금강호’에 싣고 신요댄 비금면 인근 해상으로 이송한 후 선쇼때|서 총살 후 바디에 수장시켰다 해군기지사령부., ClC, 목포경찰서가 합동작전으로 보도 연맹원을 처리하였다 희생된 보도연맹원 전체 인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십 명 정도이다” 라고 진술하였다)9) 함평읍어1서 예비검속 되어 학교면 얼음재에서 희생된 정준기의 시신을 수습한 정안기는 “형 정준기가 예비검속 되어 함평여중 강S배| 구금되었는데, 구금 중이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부모가 나산면 입태에 갔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주민들의 ‘학교 면 얼음재로 트럭 2대에 사람들을 싣고 것k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서 시체 두 무더 기 속에서 형의 시신을 수습하였다”라고 진술하였다;30) 신광면에서 예비겁속 되어 함평여중 강댐1 구금 중 나산면 넙태로 끌려갔으나 희생을 면 한 노기현은 “함평여중 강묘배| 구금 중 나산면 넙태로 트럭 12대에 태워져 끌려갔다 한 사람 씩 뒤로 손을 묶고 다시 3명씩 연결 시켰는데 트럭에 구금 된 사람과 경찰 3~4명이 함께 탔 다 넙태에 차료때 도츠품}는 순서대로 사살했는데 3인을 한 조로 하여 앞으로 걷게 한 후 경 흘떼 뒤에서 총을 왔다”라고 진술하였다;31) 이들이 연행 · 소집 된 것은 가족들과 동네 사림들이 목격하였쿄2) 이들이 구금 중 대부분 28) 참고인 000 진술내용 녹음-(2009.꼈) 29) 참고인 。。 진술내용 녹음-(2009.7.29) 30) 신청인 정안기 진술조서(2003.9.11.) 31) 참고인 노기현 진술내용 녹음~21뼈.5.29, 2cχ~}21l.) - 4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