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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4> 중요 참고인(나산면 구샌1 넙태 생존자와 국민보도연맹 월야면 총무) 조사 상황 轉蘭흡蘭藏蟲홉활蕭₩훌훌 홉 신광면 1 2m3.5.29. I사무소 노기현 (22서11) 1 2roJ .211.1 참고인 자택 iι으­ , 0 • 한국전쟁 발발 전 죄J펼동을 승떤 숙부 때문에 신굉X써에 3 챔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적이 있음 X써어써 풀려난 후 경햄 권유로 19i9년 10월 경 보 도연맹에가입힘; . 15m년 7월 11옐음력 5월 26웹 신광'^l^i로 열}는 연릭을 소방대원에게 받음: 경찰이 직접 연행한 시펌도 있었음. 연행 • 짧 된 λ범들을 산광지서어써 분 류승}여 풀려난 사렴도 있고 나머지는 다음 날 새벽 함평여중으로 이송 됨. ‘임 시 수용4꺼려고 해}까 순현1 -양봐I는 경챔 말을 믿고 따름. · 구금 중에도 전쟁이 빌발 한 줄 전혀 몰랐고 구금 중에 아무것도 하지 없£으 며 죽일 것이라는 것을 전혀 느까지 못함: 구금된 시펌은 총 2명임. 하루에 두 번씩 인원점검을 했해 내가 u}:;z.l막 2 강뺀l라서 기억합 .222명 중 중 3명(니샌」 사펌j은 석방되고 낌9명이 트럭 E대에 분승되어 손을 포박 당한 채 니~견 넙태 희생현장으로 끌려감: 끌려가카 전 /현 수용소가 좁 0써 더 안력한 수용소로 여러분을 모시기 위빼 보내드리니 순순히 웅해주 십시오f라는 경챔 말을 믿음 · 한 사림쩍 뒤로 손을 묶고 다시 3명씩 연결 시켰는데 사람들을 묶으면서 신발 을 벗김. 가족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안주고 새끼로 묶고 신발을 벗기자 i죽이 는귀.t.'라는 센}이 옮; 트럭에 구금 된 사렴과 경찰 3~4명이 함께 탔고 쿄 R 를 들지 못하케 힘: 경찰은 æ식 소총을 휴대힘: • 나산면 업태서 치렁이 도칙하는 순서대로 사살했는데 3언을 한 조로 하여 앞 으로 걷게 한 후 경찰이 뒤에서 총을 쏟 매장용 구렁이는 파져있지 않았음: 3 명씩 묶여 았었기 때문에 도망을 갈 수도 없었고 그꽤는 이미 정신이 없고 혼 미한상돼였음 · 총살집행지는 연맹원들과 함께 트럭에 타고 간 힘평경찰서 경찰이었음. 나는 3 명 중 오른쪽이었는데 “대한핀국 만서r를 하니까 두 사람이 따라서 외쳤고 만 세 3칭이 끝나71김}자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음. 나는 오른쪽 귀를 맞잊뀔 총소 리를 듣고 3명이 함께 쓰러졌음. 내가 살아있는 것을 확언한 경찰이 획인 사살 을 히였고 나는 기절함 깨어니서 보니 총일이 오른쪽 등 뒤에서 오른쪽 쇄골 뼈 있는곳으로관통힘: · 그날 소나기가 잠깐 왔었고 기절했다가 볕이 뜨거워서 정산을 차려보니 살아 있었음. 주위를 살펴보니 함평읍에 시는 김표씨까 이틀의 시신을 매장을 하는 중이었음. 김씨는 연맹원들을 트럭에 싣고 가는 것을 보고 관을 준비하여 자전 거메싣고왔음. · 내까 움직이지 못허는 상돼로 누워있는데 잠시 후 가족들이 시신을 찾으펴고 엄청나게 옴. 김씨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나를 찾으러 현쟁R 온 부모를 만나서 일몰 후 일어남 집으로 71찌 않고 힘평읍에 피산을 한 후 사힘들에게 나의 생 존λ}실을 힘구해줄 것을 부틱함; 경찰은 연맹원을 총살하고 거7써 바로 후퇴 했으며 그 이튿날 인민군이 들어옴. · 나중에 듣기로 럽태에서 모두 12명이 희생을 면하였다는례 아는 시림:은 산광 면정만우/ 김정수임. · 결국 함평군 보도연맹원 중 갑종은 각 지서에 감금했다가 함평경찰서 유치장 으로 수용 후 목포에서 수장되었고 죄라면 죄고 죄가 아니라면 아닐 수 있는 시림들t을종 병휩은 함평여중에 수용승}였다가 얼음재와 업태에서 희생시킴. - 4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