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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면, 1951년 1월 11일 모평마을 뒤쪽 비녀봉에서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 본부 를 향해 빨치산이 총격을 가했고, 5중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1월 12일 해보면 상곡 리 모평마을에 진입하여 가옥을 소각하고 주민들을 쌍구룡 방향으로 나오게 한 뒤 집 단 총살하였다.559) 신청인들과 참고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신청인 윤양성(1961년생)의 전모(前母)인 정 영환(당시 29세)과 그 아들 윤금중(당시 7세/ 호적 미 등재), 신청인 윤금복의 조부 윤 양삼(당시 76세), 모친 장분순(당시 38세), 고모 윤분덕(당시 29세), 누나 윤호님(당시 8 세) • 윤호순(당시 7세), 신청인 채상현의 부친 채병길(당시 34세) 등 8명도 모두 주민들 과 함께 사망하였고y 유족과 친인척들이 시신을 수습하였다. 사) 대동면 백호리 사건 (1) 사건 개요 0사건 번호: 다-6665호 0사건 개요: 1951년 초 국군 제20연대는 대동면 백호리 석호마을에서 주민 엄동재 를 구타하였고/ 임동재는 그 후유증으로 1951년 6월 4일 사망하였다. (2) 사건 내용 신청인 임병식(당시 1세)은 “부친 임동재(당시 33세)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게 구타 를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1951년 6월 4일 사망하였다"560)고 진술하였는데/ 사건을 목격 한 신청인의 모친 주맹순(당시 26세)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558)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8월 참고인 윤기병이 동석한 가운데 다 .-1244호의 신청인 윤양성의 진술을 청취하였 고I 다.-3631호의 신청인 채상현과는 2008년 9월에 관련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다-1245호의 신청인 윤금복은 진 술을 거부하여y 실제 신청서를 작성하여 접수했던 마을 이장 윤길수가 2008년 8월 신청언을 대신하여 관련 내용 을 진술하였는데/ 윤길수는 “윤금복씨가 저와는 일가친척으로 촌수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으나 제가 이장 직을 맡고 있으면서 당시의 사건들에 대한 신청업무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윤금복씨 일가도 당시 사건으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윤금복씨와 연람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그 사람 이름으로 먼저 신청을 하고 나중에 윤금복씨와 연락을 취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참고인 윤길수 진술조서 2008.8.22.) 559) 진실화해위원회는 모평마을 사건에서 모두 50명의 사망자와 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을 확인하였으나(진실화 해위원회, 11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Jl, r함평 11사단 사건J , 2007, 498쪽), 참고인 윤길수는 당일 약 15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참고인 윤길수 진술조서 2008.8.22.) 560) 신청인 임병식 진술조서(2007.10.27.) - 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