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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함평 11사단 사건」 의 진실규명결정서에 누락되었다.550) 동 진실규명결정서에 따르면, 1950년 12월 31일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는 해보면 대 창리 성대마을에 빨치산이 있거나 협조자가 았다고 생각하여 마을을 소각하고 주민들 을 쌍구룡에서 집단 총살하였다.551) 즉, 1950년 12월 31일 해보면 쌍구룡에서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가 해보면 대창 리 성대마을 주민들을 집단 총살할 당시 박종순(당시 42세), 박희옥(연령 불상/ 호적 미 등재), 정필례(당시 35세)도 다른 주민들과 함께 총살되었고/ 박희관(연령 불상y 호적 미 등재)은 총상을 입은 채 박희수(당시 14세)와 함께 현장을 떠난 후 행방불명되었다. 마) 나산면 초포리 사건 (1) 사건 개요 0사건 번호: 다-10822호 0사건 개요: 1950년 12월 말경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는 나산면 초포리에서 나 산면 월봉리 주민 박성인을 사살하였다. (2) 사건 내용 나산면 월봉리에 거주하던 신청인 박기섭 (1954년생)의 숙부 박성인(당시 31세)은 “그 큰누나가 살고 있던 나산면 초포리에 이주하여 살고 있다가 마을에 진입한 국군 제20 연대 2대대 5중대에 의해 현장에서 총살당했다."552) 전쟁 이후에 박성인의 여동생과 결 혼했고 전쟁당시에는 나산변 원선리에 거주했던 참고인 정경춘(당시 12세)은 당시 상 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1950년 12월 말경 초포리 원초포마을에 진입한 5중대가 주민들을 마을 앞으로 모이게 하였는데, 마침 일을 하다가 불려나온 박성인의 옷에 땀이 젖어 있어 이를 550)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9월/ 쌍구룡 사건의 목격자 장재수와 박용원을 통해 신청인 일가의 피해사실과 관련 된 진술을 청취할 수 있었다. 551) 진실화해위원회는 쌍구룡 사건에서 모두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확인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1"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J , r함평 11사단 사건J , 2007, 496-498쪽.) 552) 신청인 박기섭 진술조서(2008.8.20.) - 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