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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 내용 신청인 정이재(1969년생)는 부친 정정수(당시 13세)를 통해 "1950년 12월 7일 월야면 월악리 내동마을에 거주하던 백부 정봉원(당시 29세)과 중부 정정원(당시 27세)이 마을 인근 속칭 남산꾀에서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에게 총살당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538)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참고인 정귀례(당시 21세)도 다음과 같이 진술하 였다. 11당시 고창의 시집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고향에 와 모친에게 얘기를 들으니l 군 인들이 주민들을 모두 남산외로 모이게 하여 다 갔는데 두 오빠(정봉원y 정정원)가 1-2차 총격이 있고도 죽지 않았다가 3차 총격에 사망을 한 것인지 다른 시신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총탄을 맞아 사망해 있더라고 하더 군요 ."539) 월야면 남산꾀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2007년 상반기에 「함평 11사단 사 건J 540)으로 진실 규명된 사건이다. 신청인 정이재는 사건 조사 당시 수차례 통화를 시 도하였으나 연결이 안 되어 조사할 수 없었고 그래서 동 진실규명결정서에는 누락되었 다.541) r함평 11사단 사건」 의 진실규명결정서에 따르면I 1950년 12월 7일 국군 제20 연대 2대대 5중대는 월야면 월야리 순촌l 송계y 괴정/ 동산마을과 월악리 지변y 내동/ 성주마을 주민들을 월야면 남산꾀로 모이게 하여 17~45세의 주민을 선별해서 1차 총격 을 가한 후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며 일으켜 세워 재차 총격을 가했고r 다시 또 살아있는 사람을 살려주겠다며 일어나게 한 뒤 마을로 가서 불을 끄라고 하고는 그 들의 뒤에서 총격을 가하였다.542) 신청인과 참고인의 진술에 따르면 정봉원(당시 29세)과 정정원(당시 27세) 역시 함평 군 월야면 남산외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1950년 12월 7일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 대에게 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 538) 신청인 정이재 진술조서(2008.8.8.),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 집안 어른들이 시신은 수습하여 고향인 월야면 계림리에 모셨다고 하더군요" 53키 참고인 정귀례 통화보고서(2009.1.28.) 54이 진실화해위원회, r"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r함평 11사단 사건J , 2007, 467-않6쪽. 541) 신청인 정이재와는 2008년 8월에 다시 연락이 되어 동월 8일 진술을 청취할 수 있었다. 542) 진실화해위원회는 남산되 사건에서 %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을 확인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r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r함평 11사단 사건J I 2007, 493-495쪽.) - 3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