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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매장했습니다."531) 참고인 김영원(당시 13세) 역시 “부모님께 당시 5중대가 마을에 있는 처자들 서너 명을 욕보인 일이 있었는데 그날도 정성순을 찾아왔다가 김태식이 울력을 안 나가고 집에서 정성순을 숨겨주고 았으니까 데리고 나가서는 죽여 버렸던 것이라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532) 또 신청인은 “아버지가 야경을 다닐 때 알고 지냈던 군인이 후에 모친 에게 와서 당일 아버지를 끌고 간 군인이 자기보다 계급이 높아 말렬 수가 없었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533) 5중대는 1950년 12월 25일 또 문장리 문암마을에서 젊은 여자들을 끌고 가며 주민 진동일(당시 48세)과 진인용(실제 진수남r 당시 13세)있4)도 함께 끌고 가 문암마을 인근 고두마을 뒷산에서 살해하였다. 신청인 진매실(당시 9세)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1/사건 하루 전에 군인들 3명이 마을에 와서 고모빨 되는 친척인 진동순(당시 20 세)을 데리고 가려했는데y 마침 진동순이 집에 없어서 그냥 갔다가 사건 당일 다시 마을에 와서 진동순을 찾았답니다. 그런데 진동순의 모친이 진동순을 항아리 속에 숨겨 놓아 찾지 못하자 동네의 다른 여자 3명을 끌고 가면서 마을에 남아있던 아버 지(진동일)와 사촌오빠(진인용)까지 끌고 갔답니다. 그 뒤로 전혀 소식을 알 수 없다 가 다음해 봄에 학도연맹원이었던 000 에게 떡이니 뭐니 가져다주며 부탁하여 사 망한 장소를 알아냈는데/ 시신이 있었던 곳은 고두마을 뒷산이었다고 하더군요."53딩 주민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참고인 진수남(당시 11세)은 “당시 마을의 남자들 은 매일 울력을 나갔는데 당일 백부(진동일)께서는 마침 식량이 떨어져 나락을 떨려고 남았다가 끌려가시게 되었고I 형님(진인용)은 끌려가는 백부님을 보고 i왜 죄 없는 백 부님을 끌고 가냐I고 따지면서 군인들을 따라 가다가 결국 같이 끌려갔는데r 젊은 여자 531) “정성순은 큰 집 당고모의 딸로 당시 문장1구에 살고 있었는데/ 그날은 아마 군인을 피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신청인 김영곤 진술조서 2007.9.13.) 532) 참고인 김영원 통화보고서(2009.1.28.) 533) 신청인 김영곤 진술조서(2007.9.13.) 534) 참고인 진수남은/ “진인용이라는 이름이 원래 참고인 본인의 이름이고 현재 본인이 사용하는 진수남이라는 이 름이 실제 사망자인 참고인의 형인데r 사망신고를 늦게 하면서 군대문제가 겹치자 집안 어른들이 사망자를 I진 인용/으로 신고하여/ 그 뒤로 참고인이 형의 이름인 /진수냥을 50여 년 동안 쓰면서 살게 되었다”고 진술하였 다.(참고인 진수남 진술조서 2009.1.23.) 535) 신청인 진매실 진술조서(2008.3.6); “나중에 부모님이 시신을 수습하러 갔는데f 그 구덩이에 두 분의 시신만 있 었던 게 아니고 다른 곳에서 끌려온 사람들의 시신도 많이 있었답니다." (참고인 진수남 진술조서 2009.1.23.) -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