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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인 양윤식은 “사건 이후 연정마을에서 연락을 받은 조부님께서 주민들과 함께 진술하였고,523) 신청인 정병채 역 연정마을에 가 시신을 시 “아버지의 시신은 였다.524) 수습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 말을 들었다”고 외사촌께서 수습해왔다는 조모님과 부친의 한편 연정마을로 피신해있던 예덕리 주민들도 역시 같은 날525) 국군을 피해 마을을 빠져나왔는데/ 그 과정에 안종기(당시 28세)는 왼쪽 발에 총탄을 맞고 혼자 떨어져 마 을을 빠져나오지 못하였다.526) 안종기는 그 뒤로 더 이상의 소식이 없이 행방불명되었는데/ 분하지 않고 학살을 자행하던 5중대의 작전 지역에서 총상까지 때문에 결국은 5중대에게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인과 빨치산을 구 입어 거동이 불편했기 없어져, 5중대가 시기 함평군 월 근거하면/ 연암리 연정마을 사건은 목격자도 없고 또 현재는 상무대가 들어오} 마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전을 벌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야면 · 해보면 · 나산면에서 5중대가 자행했던 민간인 학살의 양상에 에서의 작전상황 역시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52끼 즉 국군 제20연대 2대대 5중대는 1950년 12월 12일 영광군 묘량면 연암리 연정마을 에서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함평군 월야면 용정리 주민 양윤옥(당시 23세), 정기 면(당시 28세), 문길선/ 양관섭y 장동섭/ 김성수의 누나 등 6명을 살해하였고/ 또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주민 안종기(당시 28세)도 같은 날 같은 마을에서 5중대의 총탄에 맞은 후 더 이상의 소식이 없어 역시 현장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522) 신청인 정병채 진술조서(2007.9끄.); “연정마을 모정에서 사촌형님(양윤옥)과 정기면씨 등이 함께 집으로 돌아 갈 것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5중대 군인들이 와서 현장에서 총살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 (신청인 양윤식 진술조서 2007.9.12.) 523) 신청인 양윤식 진술조서(2007.9.12.) 524) 신청인 정병채 진술조서p에7.9.12.) 525) 신청인 안정애와 참고인 안현은 모두 안종기의 사망 일자를 확실하게 알지 못했고 음력 11월(양력 12월-1월) 만 기억하고 있었지만y 참고인 안현은 사건 발생일이 12월 6일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에서 민간인 피해가 있은 후이고 또 12월 8일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고 기억하고 있어(참고인 안현 통화보고 서 2009.1.22), 안종기 역시 12월 12일에 총상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526)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한테 들었는데 총을 왼쪽 발에 맞아 앞 동네 사람한테 같이 가자고 하였으나 사정이 여 의지 않아 혼자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전혀 소식이 없어 그때 돌아가신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청 인 안정애 진술조서 2007.9.12.) 52끼 5중대는 월야 · 해보 · 나산의 주민들이 빨치산과 내통 또는 협력하고 있다는 의심아래 마을을 소각시키는 동시 에 주민들을 불러내어 무차별적으로 집단 총살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f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J , r함평 11사단 사건J , 2007 , 467-546쪽.) - 3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