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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가 들어서서 마을이 없어졌다. 함평군 해보면 문장에 주둔한 5중대는 12월 초순 주로 월야면과 그에 인접한 장성 군 삼서면 등지에서 작전을 벌였다. 구체적으로 12월 6일에는 월야면 정산리의 장교 · 동촌 · 서촌과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에서I 12월 7일에는 월야면 월야리와 월악리에서/ 12월 9일에는 월야면 외치리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였고/51이 12월 10일에도 장성군 과 월야면 계림리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다.51끼 당시 윌야면 예덕리에는 “빨치산 함평부대가 상주하면서 집집마다 κ 8명씩 나누어 살 았는데l 이들 때문에 문장에 주둔하던 5중대가 자주 작전을 나왔고 그러다가 12월 8일 경에 함평부대가 군인들에게 쫓겨 가면서 예덕리 예동마을에도 소개령이 내려졌다."518) 신청인 양윤식(당시 17세)도 “12월 8일 군인들이 한청대원과 학도병을 동원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소개령을 내려 피난을 가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519) 그러나 마을에는 여 전히 빨치산과 내통하는 자가 있어 주민들이 쉽게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없었고, 또 당시는 5중대가 월야면 일대에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다녔기 때문에 월야면 주민 들은 부득이 군의 작전이 있을 때만 산골마을이었던 영광군 묘량면 연암리 연정마을까 지 피신을 다니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52이 12월 초 월야면 일대에서 토벌작전을 하던 5중대는 12월 12일 마침내 묘량면까지 작전지역을 확대하였다. 용정리 주민인 신청인 정병채(당시 7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당시 연정마을에 진고모님521)이 살고 계셨는데 그 분이 사건을 목격하고 용정 리로 연락을 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제가 듣기로 당일 5중대는 연정마을에 와서 아 버지(정기면/ 당시 28세)와 양윤옥(당시 23세) 그리고 김성수의 누나/ 문길선/ 양관 섭y 장동섭 등 6명의 용정리 주민을 현장에서 총살당했다고 합니다."522) 515) 참고인 안현 통화보고서(2009.1.22.) 516) 진실화해위원회, 1"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r함평 11사단 사건J , 2007, 489-4%쪽; 김영택y 『한국전쟁과 함평양민학살.! , 도서출판 사회문화원, 2001, 90-116쪽. 51끼 「함평 11사단 사건」 의「신청인 장동규는 ”외조모를 통해 당시 장성에서 작전을 하고 해질 무렵 귀대하던 5중 대가 외삼촌 박명수를 연행해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신청인 장동규 진술조서 2에7.1.18.) 518) 참고인 안현 진술조서(2007.9.12.) 519) 신청인 양윤식 진술조서(2007.9.12) 52이 “나도 그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정마을로 갔다가 하루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는데/ 일부는 계속 연정에 남아있었어요." (신청언 양윤식 진술조서 2007.9.12); “소개령이 내려졌어도 마을에 내통하는 사람이 있어 쉽게 마 을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군인들의 작전이 있을 때면 주민들은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피신을 갔 다가 저녁이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지요/’(참고인 안현 통화보고서 2009.1.22.) 521) 신청언은 부친의 이종사촌 여자형제를 /진고모I로 표현하였다. - 3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