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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황문길 I 9 대동면 백호리 。}드L λλp. I I모친을 통해 한국전쟁시기에 마을에 통화 I 01 01 .".1 I 20090131.l |위권회|오 국쿠이 주민 임동재를 심하게 구 보고서 l l 」 ) , ,타하였다는 말을 들었음. 나. 군경 측 참고언 조사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 당시 국군 제11사단 20연대에서 복무했던 장교와 사병을 포 함하여 학도병 그리고 사건 지역의 경찰 복무자를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실시하였 다. 그 조사결과는 <표 4>와 같다. <표 4> 군경 측 참고인 진술요지 연번 서。며 。 출생 당시 진술 진술 진술 연도 신분 일시 형식 장소 주요진술 구장성에 주둔하다가 11월 초에 함평 해보 문i 2대대 2008. 통화 위원 장으로 주둔지를 옮겼다. 장성과 해보에 았는 1 강순범 1933 5중대 11.13. 보고서 회 동안 민간인 4명을 처형하는 결 본 일아 있j 사병 다. 그 밖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아는 바 가 없다. 2대대 작전 과정에 민간인을 본 적은 있지만r 마을 2008. 통화 위원 소각이나 민간인 소개 및 민간인의 피해에 관 2 구영회 8중대 보고서 회 련된 기억은 전혀 없다. 1959년 소령으로 제 소대장 11.07. 대하였다. 중포 목쏘에서 시가행진을 했고r 장성과 입암y 옥과 중대장 등지에 간 기억만 있고y 중간에 부상을 당해 3 권혁로 1928 ·대전차 2008. 진술 위원 3개월가량 입원해 있다가 퇴원 후에는 광주에 11.21. 조서 회 서 하사관교육대를 책임지고 있었다. 빨치산 포 토벌작전에는 참여해 본 적이 없고y 민간인들 중대장 의 피해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다. 박기병 연대장을 호위하여 화순에 갔을 때 3 대대와 9연대 일부 병력이 합동작전으로 빨치 4 김권숙 1932 중포중대 2008. 통화 위원 산 박달 소장을 사살했다는 보고를 받았고/ 사병 11.14. 보고서 회 담양 인근으로 소총중대를 지원 나간 일도 있 었다. 1950년 11월 연대창설기념일 행λ}를 위 해 각 지역 소총중대가 광주로 복귀했고y 그 - 3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