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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지서로 연행되었다 17지 최종남은 이날 빨치산을 따라 장성군 태청산으로 갔다가 3월 초에 가정마을에 돌아온 후 신광지서에 연행되었다 풀려났다. 최 종남은 가족의 연행 소식을 불갑지서에서 피난민들에게 배식을 하였던 김 소자에게서 들었다.173) “아버지/ 어머니/ 형y 여동생/ 동생 최막동 등은 광암리 가정마을 안쪽 골짜기에 서 군경에게 연행되어 불갑국민학교에 었던 불갑지서로 인계되었습니다. 불갑 지서 앞 명자정에 살았던 김소자씨가 인척이 되는데/ 이 분이 지서에 있는 사람 들에게 배식하면서 제 가족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서 가족이 1951년 2월 25일 쌍운리 옴팍골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전날 밤 주민 2명 이 울타리를 넘어 도망쳐 이 때문에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174) 이날 옴팍골에서 총살된 최이남의 가족은 최이남과 최이남의 처 이부덕(당 시 44세), 아들 최종철(당시 16세), 딸 최귀임(당시 5세), 아들 최막동(당시 2 세) 등이다. 해보면 광암리 가정마을 박종한(당시 54세)의 가족도 옴팍골에서 총살되었 다고 한다. 박종한의 가족은 1950년 12월 경찰의 소개명령에 따라 피난을 나 갔는데 신광면 삼덕리 새납골 =수 해보면 대창리 창서마을 =수 나산면 이문리 석지마을을 거쳐 1951년 2월 20일 해보면 산내리 송산에 들어왔다.175) 박종 한의 가족이 산내리 송산에 돌아온 이유에 대하여 박종한의 아들 박득수(신 청인 · 당시 14세)는 1/쌍구룡 사건 후 남의 동네에 피난가면 군인들이 들어와 마을사람들까지 다 죽인다고 하여 피난이 힘들었고/ 형 박공수가 경찰 편에 서 일을 하여 안심하고 들어갔다”고 진술하였다.176) 산내리 송산에 도착한 박종한의 가족은 국군과 빨치산의 교전을 피하면서 구수재를 넘어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까지 갔다. 그곳에 숨어있던 박종한 가족은 경찰에게 연행되어 불갑지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조사 과정애서 박종한은 아들이 “경찰 편애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자 지 172) 신청인 최종남 진술조서 (2008.8.19.) 173) 신청인 최종남 통화보고(2008.11.5.); 영광군 불갑면 안맹리 김판성은 ”김소자가 숙부인 데 20여 년 전에 사망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김판성 통화보고(2008.11.12.) 174) 신청 인 최종남 진술조서 (2008.8.19.) 175) 신청 인 박득수 진술조서 (2008.8.19.) 176) 신청인 박득수 진술조서 (2008.8.19.) 얹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