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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기도 하였다.16η 정광전은 그해 4월(음력 3월)이 되어서야 사촌형과 함께 가서 아버지와 동생 정광현(당시 3세)의 시신168)은 수습하였지만 어머니 강원 순(당시 39세)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다. 불갑면 금계리 회산 강복수(당시 41세)와 아들 강대문(당시 18세), 강대완(당 시 15세)은 대보름작전이 끝나고 마을에 들어온 경찰과 청년단원들에 의하여 삼학출장소로 연행되었다)69) 삼학출장소에 3일간 있었던 강복수의 가족은 불 갑지서로 옮겨졌다가170) 2월 25일 아침 강복수와 아들 강대문은 경찰에 의하여 쌍운리 옴팍골에서 총살되었고 15세였던 강대완은 총살을 면하였다. 당시 아버 지y 형과 함께 불갑지서에 있었던 신청인 강대완의 진술이다. “사건 당일인 음력 1월 20일 학살당한 사람은 현장으로 끌려가고 나머지 주민은 불갑지서에 남았는데/ 이때 아버지와 형이 옴팍골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 니다- 학살흰장은 싹고채 너머혀\ 었는페 구덩야를 파고 2ù í 용썩 냐누어 넣고 차례 로 총살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구멍이를 메운 흔적을 보 았고/ 부근에서 아버지의 선발을 발견하여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171) 강대완은 한 달 뒤 어머니/ 동생과 한꺼} 가서 아버지의 시선을 수습하여 근 처에 가매장하였다. 강대완은 삼학출장소에 갇혀있을 때 경찰에게 구타당하여 지금도 왼쪽 검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정일성의 가족과 강대완의 가족이 영광 쪽에서 경찰에게 연행된 것과 달리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가정마을 최이현(당시 53세)의 가족은 용천사 부근 가정 마을 안쪽 골짜기에서 경찰에게 연행되었다고 한다. 최이현의 큰아들인 신청인 최종남(당시 17세)만 산내리 산안마을 밭고랑 에 숨어 있었고y 다른 가족은 가정마을 안쪽 골짜기로 피신을 하였다가 16η “지서장은 차석에게 열 살 아상은 무조건 죽이라고 하였지만 차석이 열다섯 살 이상을 선별하여서 많은 사람이 살았습니다.“ 신청인 정광전 진술조서 (2008.6.24.) 168) “옴팍골에 시신을 수습하러 가서 보니 동생 정광현의 시신은 맨 위에 있었습니다" 신 청 인 정 광전 진술조서 (2008.6.24.) 169) 신청인 강대완 진술조서 (2008.6.24.) 170) 불갑지서/ 묘량지서/ 삼학출장소에 연행된 주민은 면별로 분류하여 불갑떤 출신은 불갑 지서로I 묘량면 출신은 묘량지서로 인계하였습니다. 신청 인 강대완 진술조서 (2008.6.24.) 171) 신청인 강대완 진술조서 (2008.6.24.) - 334 -